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크바의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궁(왼쪽)과 붉은 광장의 성바실리카 사원(오른쪽) 뒤로 보름달이 뜨는 모습. 러시아는 최근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한 디스인포메이션 공작으로 서방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이터=뉴스1


러시아는 최근 인공지능(AI)까지 활용한 디스인포메이션(허위정보·역정보) 공작과 대규모 기만전, 영향력 공작으로 서방의 균열을 노리고 있다. 영국의 앤디 버넘 총리가 이를 대놓고 경고했다. 버넘 총리는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 기관들은 거짓과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데 온갖 수단을 쓴다"며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은 매년 정보조작에 13억 파운드(약 2조4000억원)를 쓴다"고 공개했다.
BBC에 따르면 버넘은 10월 11일에는 러시아가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에도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디스인포메이션전 공작금 규모와 브렉시트 개입 사실을 밝힌 것은 버넘이 처음이다. 그는 적대국의 허위정보전에 대응할 '국가정보방어센터(NIDC)' 설립을 발표했다. 사이버 안보 위협에는 해킹·크래킹뿐 아니라 가짜뉴스도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가짜뉴스는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국익과 민주주의 가치를 침해한다.

프랑스의 디스인포메이션 대응 방첩기관인 비지눔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군 총참모부 산하 공작기관인 정찰총국(GRU)은 수백 개의 가짜뉴스 사이트로 이뤄진 '프라우다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는 AI 대형언어모델(LLM)과 자동 기계번역 기술을 동원해 영어는 물론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하루 평균 1만 개, 연 360만 개가 넘는 친러시아 성향의 의도된 가짜뉴스를 그럴싸한 내용으로 생성해 유포하고 있다. 가짜뉴스들은 알고리즘을 타고 전 세계의 페이스북·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동영상·스트리밍 플랫폼으로 퍼져나가면서 온종일 모바일·노트북에 매달린 이용자들의 두뇌를 교묘하게 조종할 우려가 있다.

정보세계에선 최근 서방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배후에 이러한 공작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에선 지난 9월 8일 친러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옛 동독지역인 작센안할트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10월 6일에는 주의회 투표에서 AfD가 주의회 의장을 배출했다. 모든 비극우정당은 극우정당과는 협력하지 않는 '방화벽(Brandmauer)' 전통이 이렇게 무너졌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서방 정보당국은 친러 AfD가 주정부 선거에서 승리하자 독일과의 정보 교류를 조금씩 제한하기 시작했다. 독일 지방정부에선 주헌법보호청(LfV)이 대내외 정보를 모두 담당해 연방정보기관과 정보 전반을 공유하기 때문에 자칫 이를 통해 서방 주요 정보가 적성국으로 새어 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해외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BND) 국장을 지낸 아우구스트 하닝과 그의 비서실장이 지난 12년간 기밀을 빼돌려 외국 정보기관에 팔아넘기다 10월 초 체포된 사건으로 정보공유의 폭은 더욱 좁아졌을 것이다. 정보세계에서 보안과 방첩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에서 가짜뉴스를 통한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와 영향력 공작이 먹히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 엿보인다. 인터넷에서 '남북대화 푸틴 기여론' '젤렌스키 항복 안 해 희생 커져' 등 황당한 주장이 끊임없이 들리기 때문이다. '북한의 병력과 포탄, 미사일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주선해줄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북한 병력과 중국 부품으로 드론전·포격전·미사일전을 이어가는 러시아가 남북 사이를 중재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설혹 한다고 해도 누구 편을 들지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젤렌스키가 항복을 하지 않아 희생이 크다는 주장은 러시아 프로파간다를 연상시킨다. 일본에 저항하는 대신 매년 거액의 세비(연금 성격)와 왕족 지위를 보장받고 망국을 받아들인 고종이 현명한 평화주의자라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같은 논리라면 미국은 왜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이 원하는 석유 수출을 재개하는 대신 10만 명이 넘는 목숨을 바쳐가며 태평양전쟁을 치렀을까. 우크라이나전의 젤렌스키 책임론은 국가수호나 국제관계 관점에선 있을 수 없는 논리인 이유다.

비록 인터넷 공간이지만 이런 논리가 횡행하는 건 푸틴의 오랜 공작이 먹히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러시아가 한국에 대한 영향력 공작을 한다면 서방 동맹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한국을 서방 일원에서 이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란 점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스텔스' 영향력 공작에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할 때다. 방첩 당국은 러시아의 영향력 공작을 철저히 색출하고 AI까지 동원한 디스인포메이션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정보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해킹이나 디지털 전쟁에 대응할 국가안보 차원의 디지털 보안 능력도 확보하고 확산해야 한다. 다영역·다차원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AI 시대의 사이버 안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