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는 생각만 한다. 반면에 승자는 어떠한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라고. 정말 그뿐일까. 이건 아니다. 생각과 행동을 이어주는 술(述)이 중간에 반드시 있었다.
그때그때 떠오른 좋은 생각을 기억에만 의존해 담고자 한다면 결과는 그릇이 깨지는 헛수고가 된다. 기억은 믿을 만하지 않다. 이 때문에 승자가 아니라 스스로 패자가 되는 것이다. 패자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뒤늦게 “그거(아이디어) 나도 생각했던 건데”하고 말이다. 생각은 물과 같아서 담는 그릇에 따라서 천양지차로 모양이나 결과가 달라지는 법.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기억만 하려고 하고 기록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하라.”
한양대 정민 교수가 지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刊)에 나오는 얘기다. 이른바 ‘수사차록법(隨思箚錄法)’이다. 수사차록(隨思箚錄)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해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덧붙여 정민 교수는 설명하길 “생각은 쉽게 달아난다. 붙들어두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서 생각을 붙들어두는 방법으로 메모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술(酒) 한잔을 하면서도 좋은 정보가 나오거나 퍼뜩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이를 바로바로 승자는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적는(述) 거다. 그런 거다. 그러니 그가 술술(酒述) 풀리며 가정도 그렇고 직장과 사회에서도 남 보기에 아주 잘 나가는 거다.
충북 괴산하고도 능촌리, 이곳에는 그 유명한 백곡 김득신(1604~1684)의 ‘취묵당(醉默堂)’이란 정자가 괴강을 무릇 바라보고 있다고 하지, 아마도. 그리고 ‘독수기(讀數記)가 그곳 한편에 걸려 있다고 한다. 독수기는 만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과 읽은 횟수를 기록한 것이라고 전한다. 왜 그랬을까. 백곡(栢谷) 선생은 남달리 총명하진 못했다. 정민 교수의 책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그대로 옮긴다.
가장 좋아했던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3000번을 읽었다고 적고 있다. (김득신) 스스로도 이를 자부하여 자신의 당호를 억만재(億萬齋)라 지었다. 그런데도 말을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의 집에서 들려오는 <백이전> 읽는 소리를 듣고는,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는 엽기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겹도록 하도 들어 뜻도 모르는 채 다 외운 하인이 그 자리에서 줄줄 읊자 그제야 <백이전>인 줄을 깨달았다.
뻥이 좀 심했다고 할지라도 행간의 숨은 의미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머리가 총명하지 않더라도 수천번 아니 수만번을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된다, 된다, 된다(成功)는 속 깊은 뜻이리라. 아니 그러한가.
정자의 이름을 왜 하필이면 ‘취묵당(醉默堂)’이라고 지었을까. 추측건대 내 생각은 이렇다. 추(醜)와 반대로 취(醉)는 술(酒)을 잘 마셨다(酉+卒=醉)라는 의미다. 묵(默)은 ‘잠잠한 침묵’을 가리키니 무언가 적었다(述)는 뜻으로 보인다. 이를 연결하자. 그러면 ‘술술’이 된다. 해서 ‘취묵당(醉默堂)’은 백곡 선생이 술 마시는 공간. 그리고 무언가를 메모하는 공간. 즉 ‘술술 푸는 공간’이라고 하겠다. 괴강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백곡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윽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끊임없이 중요한 부분을 베껴 쓰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는 방식의 독서’를 위한 부산한 행동이 아닌 잠잠하고 고요한 묵(默)의 황홀한 순간을 김득신은 만끽하고자 했을 거다. 그래서 취묵당(醉默堂)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추측한다. 상상한다. 그리고 이렇게 내 즉흥적인 생각을 따라서 글로 남기고자 적는 거다.
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거듭 말하길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야말로 조선 최고의 메모광이었다고 말한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다산 자신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메모하고 생각하고 정리했던 메모광이요 정리광이었다. 스스로도 궁벽한 곳에 살면서 할 일이 없어 육경과 사서를 여러 해 동안 궁구하고 탐색하면서 하나라도 얻으면 그 즉시 기록해서 보관해두곤 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메모가 밑거름이 되어 수많은 저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메모도 해봐야 요령이 생긴다. 처음엔 두서가 없다가도 나중엔 방향이 생긴다. 방향이 생겨야 집중력도 생기고, 작업에 가속도가 붙는다.
그렇다. 메모도 자꾸 해봐야지 노하우가 기술로 생겨나는 거다. 비싼 다이어리를 산다고 해서 메모가 결코 좋아지고 나아지는 게 아니다. 정민 교수에 따르면 연암 박지원 선생(1737~1805)이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책상머리에 앉아 쓴 글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이렇게 추측한다. 다음은그 내용이다.
가는 곳마다 지명을 묻고, 만난 사람의 이름도 물었다. 들은 내용은 즉시 메모했다. 중간중간 있었던 사소한 일들도 잊지 않게끔 적어 두었다. 이런 자세한 여행기는 절대 놀라운 기억력의 산물이 아니다. 꼼꼼한 메모의 결과다. 나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다가도 드넓은 만주벌을 가면서 틈만 나면 말 잔등 위에 쪼그리고 앉아 공책을 꺼내 메모를 하던 광경이 떠올라 혼자 웃곤 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력이 아니다. 책상머리에서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만 어디 <열하일기>라는 명작이 완성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명작의 완성은 꼼꼼한 메모가 있었기에 책으로 펴냄이 가능했던 것이리라.
어쨌든 인생도 그렇고 사회생활도 그렇고 하물며 내 사업도 마찬가지다. 술(酒) 잘 하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성공의 조건에서 승자가 되기에는 2%가 부족하다. 해서 술(酒) 마시며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종이와 펜을 들고 틈만 나면 술(述), 즉 꼼꼼하게 기록하라는 거다.
역사의 이름난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자기계발에 필요한 술술술(酒述術)에서 최소한 두 가지는 갖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술(酒) 못하는 체질은 메모와 재주를 일컫는 술술(述術)에 아주 세고, 지닌 바 재주가 부족한 사람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술술(酒述)의 습관을 키워 없었거나 하찮던 재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처칠은 알다시피 알코올 중독자이었으나 수상이 된 바 있으며 기억력이 엉망인 백곡 선생 김득신은 조선에서 마침내 과거급제에 당당하게 성공하지 않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술술 풀린다, 라는 말에는 술이 최소한 두가지다. 두가지가 반복되는 것을 우리는 왜 그런 것인지 인생과 비즈니스에서 패자가 아니라 승자가 되고자 한다면 진지하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세가지를 고루 다 잘하면 참 좋다. 하지만 두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세가지를 지니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게다. 또 현실적으로 이루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게다. 세상사, 모두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