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자기 자신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은 경험이 있는가? 마치 뒤통수에 번개를 맞은 듯. 그리고 그 깨달음이 자신은 보통의 존재일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흔히 재테크와 처세술에 대한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요즘 잘먹고 잘사는 방법을 코칭하는 책들 사이에서 온통 노란색으로 덮인 소박한 책 한권이 눈에 띈다.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다.

<보통의 존재>는 이 작가가 말 그대로 자신이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면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일까? 책에 쓰여진 작가의 프로필은 '이석원, 1971년생, 나이 탐험가'가 전부다. 프로필에는 그가 인디음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록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란 사실조차 언급돼 있지 않다.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한장 없다.  

프로필에 이어 그는 이 책과 책 속 사연들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궁금했다. 보통의 존재가 생각하는 돈과 성공,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홍대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그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돈과 성공

사실 이 작가는 재테크 전문지에 등장하기엔 상당히 이질적인 인물일지 모른다. 그는 재산을 불리거나 전문분야에서 성공하고 조금이나마 멋지게 사는 방법을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도 자신을 '재테크 잼병'이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그 역시 인생에 있어서 돈과 성공의 진정한 가치와 철학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다.

이 책의 두번째 이야기에선 11년 전 자신의 모습을 가난한 뮤지션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지금 그는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언더그라운드 록커와는 거리가 멀다. 수많은 팬들을 확보한 '언니네 이발관'은 수익을 내면서 공연하는 밴드이기 때문에 이 작가는 결코 배고픈 예술가도 아니다.

"돈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적도 있었죠. 어릴 적 돈만 많다면 힘든 것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수억원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죠. 삶에 있어서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더군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20~30%가량 싸게 살 수 있겠지만, 그는 돈을 더 들이고 발품을 팔더라도 서점 쇼핑을 즐긴다. 서점에서 책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본 후 현장에서 값을 치르고 책을 소유할 때의 기쁨이 돈 몇푼을 아끼는 것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이 작가만의 삶의 재테크라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그에게 성공이란? "꿈이 있습니다. 신뢰받는 창작자가 되는 것이죠."

◆행복과 신뢰

성공에 대한 답을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존재가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보통의 존재>가 일약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섰는데, 지금은 어떻단 말인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논하면서 일면만 갖고 전체를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이 출간돼서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때부터 행복한 사람으로 인식돼 버리죠. 하지만 저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합니다."

책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찾고 책에 대한 호평을 듣는 순간만큼 그는 더 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다시 혼자가 되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하루 종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늘 고민합니다. 여전히 행복을 찾고 있으며, 외로움과 싸우고 있죠."
 
<보통의 존재>는 결코 행복을 찾거나 전달해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독자들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 외로움과 허전함이 묻어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 책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위로와 공감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명확한 삶의 지침과 쓰디쓴 충고가 최선은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더욱 절실할 때가 많다.

그것이 <보통의 존재>가 갖고 있는 힘이다. 이 작가 역시 자신이 누군가의 글로 위로를 받은 후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황경신 <페이퍼> 편집장께서 쓰신 제 인터뷰 기사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됐었어요. 누군가에게 처음 위로를 받아보니 나도 누군가를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들이 하나같이 희망, 긍정, 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는 그 책들에서 어떤 희망과 위로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기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또 한 명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바로 공감이다. 이 책은 어떤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냥 사랑과 이별, 가족, 친구 등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와 소통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스스로 독자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했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쓴 후 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 메일을 읽어본 후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차례 거쳤죠. 스스로 독자가 되기 위한 저만의 방식이었죠. 그렇게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꼭지당 50번 이상씩 이메일을 보내고 수정했답니다."

현재 이 작가는 또 다른 책들을 구상 중이다. 이미 써놓은 내용도 있다. 소설도 쓸 계획이고 여행기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 물론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름값을 앞세워 내놓는 기획된 책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결코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가 아닌, 앞으로도 단지 보통의 존재이자 작가 이석원이 쓴 책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