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표는 기호 3번 김민석 후보가 당선됐음을 선포한다."
17일 오후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DCC) 제2전시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김민석 후보의 신임 당대표 당선이 선언됐다. 개표 결과 발표 직후 정청래 후보는 잠시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이내 김 후보 쪽으로 몸을 돌려 먼저 손을 내밀고 등을 툭툭 두드리며 축하를 건넸다. 두 후보가 치열했던 경선의 앙금을 털어내려는듯 손을 꼭 맞잡고 포옹하자 장내를 가득 채운 당원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행사장 밖에서는 장대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악천후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현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1만여명의 당원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본행사 시작 1시간30분 전인 오후 12시, 행사장 입구엔 200미터가량의 줄이 형성되기도 했다.

빗속 풍경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파란 우비를 뒤집어쓴 당원들은 후보 이름이 적힌 손피켓과 응원봉을 들고 줄을 섰다. 바짓단과 운동화가 흠뻑 젖었지만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곳곳에서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응원 구호를 맞춰보는 모습도 보였다. 전당대회라기보다 대형 콘서트장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민주당 굿즈'를 사기 위한 오픈런도 벌어졌다. 판매 부스가 문을 연 시간은 오전 10시30분이었지만 30분 전부터 기다리는 당원들이 생겨났다. 우비와 티셔츠, 각종 장신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색으로 꾸민 이들도 눈에 띄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굿즈 판매를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지지자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비가 이렇게 오는데도 열기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정청래 지지자들은 눈물…"이제 공격 그만"

이날 당선을 예견한듯 김 후보는 밝은 미소를 띤 채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휠체어석 당원들에게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등 여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면 정청래 후보는 주먹을 꽉 쥔 채 다소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정견 연설에서 김 후보는 "권노갑 상임고문부터 20대 청년 당원까지 하나로 뭉친 68년 역사정당의 자부심으로 'K-황금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으로 내려왔다.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뛰어왔다. 당원주권시대를 여는 첫 당대표로서 가짜 당원의 경선 농단을 뿌리뽑고 진짜 당원주권시대를 완성하겠다"고 호소해 연신 "김민석" 연호를 끌어냈다.
정 후보는 오른손 주먹을 쥐어 올리며 강한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정 후보는 "개혁은 민주당의 깃발이자 정체성이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성과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안의 차이가 아무리 큰들 상대방보다 크겠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정신을 계승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 후보는 대구·경북 지역 승리와 당의 쇄신을 강조하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가 될 각오로 온몸을 바쳐 집권여당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경선이 끝난 뒤 지지자들은 현장 곳곳에서 서로 얼싸안은 채 감격과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자리에 남아 말없이 무대를 바라보는 당원들도 있었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바람개비를 든 정 후보 지지자들은 "우리 대표님 불쌍해서 어떡해" "의원들이 아무도 안 도와줬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것" "이제 끝났으니 공격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축 처진 어깨로 행사장을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비바람 뚫고 집결한 1만 당원… "경선 끝났으니 하나로 뭉쳐야"

현장에서 만난 당원들은 새 지도부를 향해서 한목소리로 통합을 주문했다. 대전에서 무명가수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씨는 하루 종일 응원 구호를 외친 탓에 목이 쉬어 있었다. 그는 "지지하던 후보의 득표가 기대에 못 미쳐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현장에 왔다"며 "선거 과정에서 상대를 비방하거나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퍼지면서 당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내분을 멈추고 정책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하나로 뭉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 양주에서 온 황씨는 전날 집을 나서 대전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행사장을 찾았다. 김 후보를 지지했다는 황씨는 "국민의 삶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이를 정책으로 풀어내려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3주간 이어진 경선 일정에는 피로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의원 표가 갖는 의미도 과거와 달라진 상황에서 경선을 이렇게 길게 끌고 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경선이 길어질수록 후보뿐 아니라 지지자 사이의 감정도 상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산 금정구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30분 넘게 달려왔다는 윤씨는 "과거 서울에서 전당대회가 열릴 때보다는 가까워져 심적 부담을 덜었다"며 웃은 뒤 "새 지도부가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을 효율적으로 치를 수 있는 정치제도 개편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방자치 정책을 힘 있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선증을 받고 단상에 오른 김 대표는 당기를 넘겨받으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수락연설 중 40년 정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에는 몇 차례 목이 메었다. 김 대표는 "스무 살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서서 40년 만에 민주당 대표가 됐다"며 "아들 때문에 거리의 투사가 돼 전경에게 장미를 건넸던 어머니 생각에 울컥하고, 아버지와 동갑인 곧 100세 권노갑 고문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울컥한다"고 말했다. 이어 "18년 광야의 세월을 지켜봐 준 벗들 앞이라 울컥하고 긴 세월 힘들었지만 견뎌낸 제 자신에게도 울컥한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어 새 민주당을 위한 'ABC 플랜'을 제시했다. A는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생활 여력)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정치, B는 '브로드'(Broad·확장)로 지지 기반을 더하고 넓히는 확장정치, C는 '컴피턴스'(Competence·경쟁력)로 실력으로 성과를 증명하는 유능한 정치를 뜻한다.
김 후보는 "우리는 어려운 당내외의 상황을 맞이했다. 앞으로 더 큰 내우외환의 풍파가 몰아닥칠 것"이라며 "몇십 년간 쌓아온 인내와 작은 지혜로 이 내우외환을 동지들과, 신임 지도부와 함께 반드시 돌파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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