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증시가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주도 하에 IT와 자동차주가 시장을 견인했던 것과 달리 올 들어서는 그동안 소외받았던 한국전력, KT 등 저평가 종목들이 주목받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국민연금기금의 매수주체 부각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전력이나 KT 등 전통적으로 중장기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저평가된 경기 방어주들이 들썩이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전력은 최근 1월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 동안 무려 14% 급등했고, KT도 1월20일 하루에만 6.8% 오른 것을 비롯해 15일부터 나흘간 11% 올랐다.
그동안 소외받았던 종목들의 급등에는 연기금의 뒷받침이 있었다. 연기금이 시장 전체를 주도하기는 어렵더라도, 종목별로는 매수세가 유입되는 것만으로도 큰 호재가 된다.
특히 올 들어 원화절상 등 환율 변화와 그동안 IT 자동차 등 수출주들이 워낙 많이 올라 외국인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에 가격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상황이다. 이와 달리 연기금이 선호하는 종목들 가운데는 저평가된 가치주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지난해 소외됐던 저평가주가 부각되는 분위기에서는 연기금이 사는 종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유용한 투자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연기금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단기적인 매매에 활용한다기보다는 중장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연기금, 수급주체로 떠오를 수 있을까
연기금은 지난 18일 코스피시장에서 1675억원, 코스닥시장에서 101억원어치를 각각 순매수한 데 이어 20일까지 사흘간 순매수를 하고 있다. 연기금이 1000억원 이상 순매수로 나선 것은 1년 만이다. 연기금의 올해 운용계획을 보면 이 같은 순매수가 좀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식에 6조9000억원의 신규 자금 배분이 예상된다. 국내 주식 목표비중도 16.6%로 지난해의 15.2%보다 1.4%포인트 상향 조정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2.2%다. 이후 2개월간 연기금의 매매동향과 코스피의 상승률을 감안하면 현재 비중은 12.5% 내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목표비중인 16.6%와 비교할 때 4.1%포인트 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투자허용범위를 고려한 최소 비중인 11.6%보다 단지 0.9%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이는 앞으로 국민연금이 순매수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만약 올해 목표비중까지 매수할 경우 약 12조원의 추가 매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기금의 시장견인력 믿어도 되나
하지만 연기금이 매수주체로 나서더라도 지수 견인력이 높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단 연기금의 특성상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처럼 공격적인 순매수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동하 교보증권 연구위원은 "연기금은 점차 주요 매수 주체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이것은 연기금의 특성상 추가 상승을 견인하기 보다는 지수하락시 하방경직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연기금 누적 순매수와 MSCI코리아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배율(PER) 추이를 살펴보면 연기금은 PER 10배 이하에서는 매수, 11배 이상에서는 매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기업 12개월 PER는 10.16배 수준. 따라서 지수가 횡보 및 하락을 보일 때 연기금의 순매수 유입이 가능하다고 그는 봤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연기금의 가세는 기관 수급 보강에 매우 긍정적인 뉴스지만 연기금 등장이 기관의 주도력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기금 매매와 코스피간에 상관성이 높지 않거니와 외국인과 투신권처럼 매매 변동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코스피가 40% 급락할 때 연기금은 9조5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코스피가 50% 올랐던 지난해에는 8조2000억원어치를 팔았다. 연기금의 매매패턴은 코스피와 연동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래에셋증권의 분석이다.
◆종목별 견인력은 있다
연기금이 지수 견인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해도 종목별로 들어가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연기금이 유입되는 종목들이 빛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1월20일 하루만 놓고 보자. 이날 연기금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SK텔레콤(160억원), 한국전력(154억원), KT(145억원), KT&G(118억원) 순이었다. 같은 날 SK텔레콤은 3% 올랐고, 한전이 3.9%, KT가 무려 6.8% 급등했다. KT&G도 2.6% 상승했다. 연기금의 매수세가 유입된 종목들이 대부분 급등한 것이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강보합에 그쳤고 대부분의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선전한 셈이다. 또한 이들 종목이 평소에 무거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돋보인다. 증시 전문가들은 연기금이 매수하는 것만으로도 호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하 연구위원은 "연기금의 순매수가 유입되는 업종 가운데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종목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도 간편한 종목 선정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연기금은 자금집행 특성상 보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격적으로 사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단기 트레이딩 관점에서 따라 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연기금이 현재 자금집행에 여유가 있어서 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수급에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연기금이 사는 종목들을 중장기 관점에서 투자의 척도로 삼는 것은 괜찮지만, 단기 트레이딩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연기금의 보수적인 운용의 특성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