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얘기는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 등장한다. 이를테면 유행어다. 유행어를 되씹어 생각해보면 기막히나 대중에게는 딱 맞는 얘기다.
지금 세상은 디지털리서치의 ‘개리 킬달(Gary kildal)’을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를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세상은 언제 어디서나 1등만을 기억한다. 그런 거다.
참고로 디지털리서치(DR)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운영체계(OS)를 만들어 한때 엄청 잘 나갔던 1등 기업이었다. 그러나 창업자인 개리 킬달의 착각과 잘못으로 인해 DR-DOS는 1980년을 고비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대신에 1등을 차지한 기업이 있다. 알다시피 빌 게이츠의 MS가 그 주인공이다. 결국에 MS-DOS로 운영체계 시장을 싹쓸이 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주)농심 손욱 회장이 쓴 책, <십이지 경영학>에 나온다.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렸다.”
이렇게 주장하는 책이 최근에 나왔다. <행복의 조건>(프런티어刊)이 그것이다. 저자는 조지 베일런트. 그는 현재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세계 최장기 성인발달연구를 맡아온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면 신경도 둔해지고 반사작용도 느려진다. 40대가 되면 훌륭한 유격수가 되기 어려우며, 민간 항공사의 조종사들은 환갑이면 퇴직한다. 75세를 넘기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쇠약해져 활동에 제약이 오기 시작한다. (중략) 그러나 인간은 평생 동안 무의식적 방어기제들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뇌가 병들지 않는다면 75세가 되어서도 25세 때보다 그 기제들을 더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 나이가 들면 우리의 ‘뇌’가 병든다. 이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뇌가 병들도록 삶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평생 동안 ‘무의식적 방어기제(고통, 갈등, 불확실성…)들’을 통해 스스로를 건강하게 치유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무의식적 방어기제들 중에는 투사(Projection), 수동 공격성(Passive aggression), 분열(dissociation), 행동화(acting), 환상(fantasy)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는 기제들이 있는가 하면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와 같이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기제들도 있게 마련이다.
지나친 흡연과 과도한 음주는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음주(酒)와 메모(述)는 좋은 영향을 끼쳐 인생을 행복한 삶이 가능하도록 말 그대로 ‘술술 풀게 만든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돈’이 곧 ‘행복’은 아니다. 이에 대해 베일런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돈은 성공적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것과 거의 연관이 없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불우한 노년에 매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말이다. 어쨌든 행복해지려면 뇌가 병들지 않고 건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베스트셀러 <뇌를 움직이는 메모>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메모에 있다’고. 그러면서 ‘우뇌와 좌뇌 활용법’을 소개한다.
*우뇌적 항목
-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항상 리스트로 정리한다.
-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항목별로 적는다.
-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문장화한다.
-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그려본다.
- 그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좋아하는 인물의 저서를 읽는 등)
* 좌뇌적 항목
- 해야 할 일을 매일 검토하여 우선순위를 확인한다.
- 일정표를 확인한다.
- 순서와 절차를 지시하고 곧바로 실행한다.
- 오늘 하루 일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민첩하게 행동한다.
위에 항목과 일치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의 사람들을 소개하자면 나는 기업의 ‘CEO’가 아닐까 싶다. CEO로서 잘 나가는 이유에 첫단추는 술(酒)이고 그 다음이 메모를 뜻하는 술(述)이 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은 하루, 8만 6400초를 치열하게 사는 대한민국 대표 CEO들의 인생과 경영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책 읽는 CEO>(비즈니스북스刊)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신 부회장은 두툼한 노트를 하나 보여줬다. <로마인 이야기> 제5권을 읽고 직원들이 올린 제언을 묶은 일종의 책이었다. (중략) 그가 보여준 또 하나의 노트는 신 부회장 자신의 것이었다. 모두 15권에 달하는 로마인 이야기는 방대하기 짝이 없다. 기억력이 좋은 그조차도 간혹 중간중간 내용을 잊어버릴 정도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다 로마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따로 오려뒀다 이 노트에 스크랩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로마인 이야기> 노트를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읽거나 정리하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지식으로 쌓고 있었다.
신 부회장은 SK에너지 신헌철 부회장을 말한다. 그는 메모광이다. 기억력이 좋은 그조차도 일단 메모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내용을 정리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그를 두고서 주변에서 말하길, 손만 대면 사업이 잘 된다고 해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 부회장은 단지 운이 좋고 타이밍이 좋았던 거라고 겸손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책은 전하고 있는데 내 보기엔 ‘메모의 힘’인 것 같다. 이를 소홀히 지나치고 무시하면 ‘술술 푸는 것’에 있어 곤란함과 위기를 몸소 겪을 수밖에. 그럴 것이다.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CEO 중 한사람으로 명성이 자자한 손욱 농심 회장은 <십이지 경영학>을 통해 기업 경영자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기업 경영자는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탁월해야 한다. 위기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쌓이고 쌓여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위기임을 알아챌 정도가 되었을 때는 상황을 헤쳐나가기가 이미 매우 어렵다. 하지만 위기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징조가 있게 마련이다.”
징조란 다른 말로 ‘기미’를 의미한다. 기미는 ‘낌새’를 말하는 것으로 아주 작은 ‘사소함’으로 크기가 무시할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나에게 ‘사소한 실수’가 되는 것이다. 무릇 사소한 실수가 날마다 습관이 되면 엄청난 화를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해서 알아채려면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고 한탄하고 울분할 필요가 없다. 대신에 1등은 ‘기록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원들은 술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우리 회사 우리 조직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어쩌면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행위. 즉 투사(投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에 당신들의 CEO는 어떠한가. 성공한 CEO는 술자리에서 임원과 주주, 가족 등을 험담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분명하다. 사원과 CEO의 차이다. 사원은 부정적으로 말하는데 CEO는 긍정적으로 들으려고 한다.
사원은 기억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술 깬 그 다음날에 까맣게 잊어버리나, CEO는 노트나 명함 등에 적었기 때문에 술 깬 그 다음날에도 걱정하지 않고 민첩하게 행동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사원은 불평불만으로 술자리를 그치거나 망치고 만다. 반면 임원이 되고 CEO가 될 사람은 다르게 행동한다. 손욱 회장의 말처럼 “내가 한번 해결해보겠다” 아니면 “우리 함께 해결해보자”는 목소리로 분위기를 바꿀 줄 안다. 적당한 음주와 메모 습관이 ‘술술 풀린다’는 그야말로 1등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아직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