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형펀드 환매'의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증시에서 주식형펀드 환매로 이탈한 돈은 6조원을 넘는다. 환매 강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다시 뭉칫돈이 빠져나가는 등 펀드의 '증시탈출'은 기회만 엿보고 있다.

지수가 반등할수록 주식형펀드에 대기한 환매 예정 자금이 호시탐탐 빠져나갈 구멍만 찾다보니 증시도 속 시원한 반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매수'라는 주사를 맞으며 증시가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환매라는 불길이 쉽게 꺼질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주식시장은 속앓이를 하는 모습이다.
 

◆사그러들지 않는 환매
 
올 들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의 순유출은 6조원이 넘는다. 특히 4월 들어서만 4조원에 육박하는 주식형펀드 환매가 이뤄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2일의 경우 국내 주식형펀드는 하루 만에 5003억원 순감했다. 이날 빠진 자금은 주식형펀드 하루 감소폭으로는 2006년 12월21일 9232억원 이후 최대다.
 
사실 2006년 당시에는 중국증시 등 해외증시의 활황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갈아타기 위한 환매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증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 러시는 '원금 회복'을 위한 펀드깨기 측면이 강하다.
 
코스피지수 1700선에서 펀드탈출이 불붙는 이유는 뭘까. 증권가에서는 '업보'라고 말한다. 3년 전 국내증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업보라는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다.
 
2007년 국내증시는 주식형펀드 열풍에 휩싸였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1월 1350선에서 11월 초 2085까지 735포인트 치솟았다. 특히 코스피지수는 4월 중순 1400선에 도달한 뒤 7월 중순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찍는 등 3개월 만에 600포인트가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코스피지수가 급등세를 나타내며 주식형펀드 열풍도 불었다. '간접투자가 대세'라는 분위기에서 선발주자인 미래에셋의 펀드가 빅히트를 치는 등 국내 펀드시장은 대목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지수가 7월에 처음 2000선을 찍은 이후 단기조정을 받으며 1600선 후반으로 밀렸고, 8월부터 재차 랠리를 시도하면서 급등하자 펀드로 향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최근 주식형펀드 환매로 쏟아지는 물량은 코스피지수가 재반등하던 시기에 집중적으로 유입된 자금인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코스피지수는 2008년 들어 하락기에 접어든 뒤 그해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수익률이 곤두박질 쳤다.
 
2007년 펀드 열풍 당시 가입한 투자자들은 금융위기 이후 곤두박질 친 수익률을 낸 펀드를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다 최근 당초 가입 지수대로 증시가 회복하면서 원금 수준으로 투자금이 원상복구 되자 앞 다퉈 환매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왕 기다린 김에…
 
현대증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 2000선까지 환매로 대기 중인 펀드자금은 33조6000억원에 이른다. 아직도 34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원금 회복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주가지수가 높아질 수록 환매욕구는 커질 것"이라며 "예전 펀드 열풍을 고려하면 피할 수 없는 증시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코스피지수 1700~1800선에 유입된 자금은 9조6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올 들어 2조6000억원가량이 환매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아직도 1800선까지 튀어나올 환매자금이 7조원이나 되는 셈이다.
 
1800선을 뚫었다 해도 1800~1900선까지 12조원, 1900~2000선까지 12조원 등 24조원가량이 환매 대기자금으로 묶여 있다.
 
증시에서는 펀드 환매를 저지하는 길은 증시 급락뿐이라는 씁쓸한 소리도 들린다. 그만큼 펀드 환매가 멈추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렵사리 원금을 되찾는 수준에서 환매에 '성공'한다 해도 저금리 때문에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은행 정기예금 1년 금리는 3% 남짓이다. 환매한 펀드 자금으로 부동산도 기웃거려 보지만 부동산 시황도 좋은 편이 아닌데다, 향후 집값 상승세도 불투명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환매한 자금으로 직접 주식투자에 나설 생각도 있지만, 증시가 오를수록 부딪치는 펀드 환매로 당분간 증시 반등이 힘든 데다, 직접투자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 망설여지기는 매한가지다.
진퇴양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는 원금 집착을 접고 기다린 김에 느긋하게 좀 더 기다리면 '최후의 승자'로 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펀드 환매가 상당부분 진행되고 나면 대기자금이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증시는 환매 부담을 버리고 급등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인내의 시간을 모두 보상받는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인내하는 자가 달콤한 열매를 먹는다'는 상식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