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에서 물러난 뒤 한 3개월 정도는 여기저기서 초청해주어 골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점점 라운드 약속이 줄더니 4개월째부터는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사회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으나 자신의 인생역정을 미뤄볼 때 납득할 수 없었다. 지인들에게 섭섭하게 한 적도 없고 원한 살 일도 한 기억이 없는데 이렇게 등을 돌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용도 각자 분담했으니 짐이 될 리 없었다.
그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구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지 않는 형편없는 골프실력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사실 그의 골프실력은 100돌이를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아내의 실력은 거기에 20타 이상을 보태야 했다.
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80대 전후를 무난히 치고 싱글골퍼도 있었으니 사실 그는 가벼운 내기에도 열외 취급을 당했다. "골프란 너무 스코어에 얽매이지 말고 즐기는 거 아니겠어?"하며 위로의 말을 던지면서도 동반자들은 100돌이가 끼어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서로 경쟁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지인들끼리 다음 약속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건강도 멀쩡하고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는데 골프를 매개로 한 지인들과의 관계가 끊기면 앞으로 살아갈 일이 너무 아득하다고 판단한 그는 독한 결심을 하고 아내를 설득했다. 아예 부부가 골프스쿨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골프를 배우는 것이었다. 처음 아내는 "할머니 소리 듣는 나이에 무슨 골프스쿨이냐?"고 고개를 저었으나 남편의 일리 있는 설득에 골프스쿨 입교를 결정했다.
수도권 외곽에 있는 골프스쿨은 골프선수를 지망하는 어린 학생들이나 당장 Q스쿨 통과를 준비하는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골프를 지도하는 곳이었지만 그는 골프스쿨 운영자와의 친분을 내세워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6개월 코스의 골프교습에 들어갔다.
골프스쿨 입교 후 부부의 일과는 골프연습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아침에 부부가 자동차를 몰고 골프스쿨에 가서 오전에 2시간, 오후 4시간씩 하루 6시간씩 교습을 받았다. 코치가 중도에 힘에 부치면 중단해도 된다고 뒷문을 열어두었으나 부부는 이를 악물고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굳은 신체를 유연하게 만드는 스트레칭에서부터 그립 잡는 법, 스탠스 서는 법, 스윙 하는 법 등 모든 것을 기본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는 골프교습을 받으면서 그동안 자신이 해온 골프가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절감했다. 골프교습을 마친 뒤 귀가해서는 근처 헬스클럽에 나가 체력강화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확히 6개월 후 정례 골프모임에 초청받은 이 부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안정적인 80대 초반의 기량을 발휘했고 아내 역시 90대 초반으로 순식간에 상위 랭커로 발돋움했다.
지금 그는 골프스쿨 입교를 일생에 가장 잘 한 일로 꼽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한번에 친구·골프·건강 등 세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자랑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