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회사 내 입지와 다양한 표정은 각자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회사의 실적과도 맞물려 있다.
LG화학은 올해 2분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김반석 부회장도 기업설명회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언제까지 (예상이) 틀리실 거냐”며 자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 LG전자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모두 현실화되며 ‘어닝 쇼크’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영업이익은 1분기보다 74% 폭락했고, 3분기에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두 기업의 실적은 주가로도 이어졌다. 30만원대 중반을 호령하는 LG화학은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21조~23조원으로 코스피 기업 중에서 4위권(8월18일 기준)이다. 특히 제조업체로는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에 이어 네번째여서 그룹의 자존심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반면 LG전자는 10만원대 초반의 주가로 10위 안에 들지 못한 채 음지에 속해 있다.
자연스레 회사의 실적과 주가는 CEO들에 대한 그룹 안팎의 평가로 연결되고 있다. 남용 부회장과 김반석 부회장, 그들의 이력과 향후 거취와 계획을 LG전자·LG화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들여다봤다.
◇LG그룹 변화의 산 증인, 남용 부회장
남용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 경영인이자 대표적인 전략가로 꼽혀왔다. 대학(서울대 경제학과)을 졸업한 뒤 1976년 그룹에 입사해 13년 만에 별(이사)을 달았던 ‘LG맨’ 남용, 그의 그룹 내 경력은 LG그룹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남 부회장은 1990년대 초중반 구본무 회장이 그룹 내 경영권 승계와 안착을 위해 의욕적으로 출범시켰던 V-추진본부(회장실 직속)에서 상무, 전무, 부사장을 거치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서 부사장으로 역할 했던 것도 그의 몫이었다. 닷컴 붐이 일 때는 LG텔레콤을 맡아 그룹의 정보통신부문을 이끌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지주회사 LG의 전략담당 사장을 맡으며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했고, 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등을 삼각축으로 하는 그룹의 재도약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2007년 1월부터는 그룹의 대표계열사 LG전자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왔다. LG전자가 2008~2009년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과 정보통신기기로 호황을 구가할 때 더욱 더 매진해야 한다며 고삐를 죈 것도 그였다.
하지만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스마트폰 열풍은 지략가 남용의 전략을 어그려뜨렸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아이폰과 선두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LG전자는 적어도 스마트폰시장에서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아이폰 못지않다’는 호평을 받으며 순조롭게 스마트폰시장에 진입한 반면 남용 선장의 'LG전자호(號)'는 다른 길을 걸었던 것. 아레나, 초콜릿 등 과거 LG전자 휴대폰 부문의 캐시카우였던 일반 히트 단말기를 업그레이드한다며 여기에 집중해 대조를 보였다. 뒤늦게 옵티머스로 스마트폰시장에 막차 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스피드 경영의 현장주의자, 김반석 부회장
지략가 남용과 달리 김반석 부회장은 전형적인 야전지휘자이자 현장주의자였다. 그의 경력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업부장, 생산부장, 공장장이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는 LG그룹 공채 출신도 아니다. 1976년 대학(서울대 화학공학과)을 졸업한 김 부회장의 첫 직장은 비료생산업체 진해화학이었다. 5년 뒤에 다시 한국화인케미칼로 옮겼고, LG화학(당시는 럭키화학)은 세번째 직장이다.
LG화학에서 처음 맡았던 일은 신규 프로젝트팀이었다. 30대 중반의 경력사원인 그는 그 후 지방근무를 도맡으며 쟁쟁한 그룹 내 공채 출신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폴리에틸렌(농업용 비닐), ABS/PS(주로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제품)사업부 등 현장은 늘 그의 몫이었다.
초년병 시절 공장근무를 마다 않던 이도 서울 본사 근무 후에는 지방근무를 꺼리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달랐다. 특히 7년간 서울에 머물다 1991년 여수로 내려와 폴리에틸렌사업을 정착시킨 것은 김반석식 스피드 경영의 기초이자 원형으로 불린다. 그는 메모광이자 부하 직원들의 애사(대표적으로는 장례식)를 잘 챙기는 큰 형님으로도 통한다.
현장 중시 경영자이다 보니 그룹 내에서 부조화가 일어난 적도 있다. LG화학과 LG석유화학을 합병할 당시 그룹 내 기류와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또 수익 위주의 경영을 중시하다 보니 R&D(연구개발)에 다소 소홀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룹 차세대 전략은 양 부회장의 미래
2010년 여름 한복판의 상황을 보면 남용 부회장과 김반석 부회장의 입지에는 현저한 간극이 보인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당시 남 부회장이 회장 비서실에서 촉망받는 임원이었던 반면 김 부회장은 능력 있는 경력사원 중 한명 정도로 꼽혔던 상황과도 비슷하다.
최근 이들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지난달 15일 LG화학의 미국 미시간주공장(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기공식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깜짝 방문하며 구본무 회장과 인사를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구 회장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고, 기공식 축사를 통해서는 '구본무 회장'과 '김반석 부회장'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외형상 LG화학과 김반석 부회장이 월등히 부각되고 있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구본무 회장의 남 부회장에 대한 신임이 여전하다는 것. 구 회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어려워진 사업은 조급해하지 말고 경영진을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일에 조직 전체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위축되지 말고 지금의 어려움을 당당히 극복해 재도약의 기회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구 회장의 이 발언은 LG전자와 남 부회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향후 그룹의 차세대 먹거리 사업에서도 양사와 양 부회장은 경쟁이 아닌 보완 관계다. LG전자의 기업간거래(B2B)·헬스케어·태양전지 등과 LG화학의 2차전지, 전자재료 사업 등이 그렇다. LG그룹의 순항 여부는 여전히 남용 부회장과 김반석 부회장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