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고속도로 사천 나들목으로 나와 3번 국도를 타고 창선대교와 삼천포대교를 건너면 남해군으로 들어선다. 삼천포항과 창선도 사이에 있는 늑도 초양도 모개도는 한려수도의 징검다리다. 이렇게 창선면 소재지를 지나면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지족해협(폭 500m, 길이 3km)이 발길을 막는다.
시속 15km 물살 흐르는 물목의 죽방렴
남해도와 창선도에 감싸 안긴 강진만 일대 조류의 속도는 평균 1.2노트(2.2km). 그런데 이 지족해협과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해협의 유속은 최대 8노트(15km)가 넘는다. 이는 시속이 최고 13노트(24km)에 이르는 전남 진도 명량해협의 유속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제법 알아주는 유속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지족해협 한가운데 나무가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전통 고기잡이 시설인 죽방렴이다. 이는 통나무를 세워놓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놓은 원시 어장을 말한다.
죽방렴을 만들기 위해선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말뚝)을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V자로 벌려 박고, 모서리에 원통형 '발통(불통, 임통)'을 만든다. 그러면 거센 조류 따라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썰물 때 '사도'를 통해 들어선 뒤 발통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어부는 썰물 때 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배를 타고 접근해 뜰채로 퍼 올리기만 하면 된다.
죽방렴 작업은 하루 2차례씩 물때를 맞춰서 한다. 물살이 셀 때 물고기가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먹이도 많아 물고기가 잘 잡힌다. 그래서 어부들은 물살이 약한 조금 때보다는 물살이 센 사리 때 더 바쁘다. 물론 조금 때라 해서 손을 놓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작업을 하지 않으면 발통 안에 든 물고기들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부들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2차례씩 자기의 죽방렴을 확인하고 관리한다.
어부들은 나설 때 보통 "물 보러 간다"고 말한다. 물때를 제대로 지키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물때는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발표한 조석표를 참고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체득한 습관적인 감각을 믿고 물을 보러나갈 때가 많다고 한다.
죽방렴 작업은 보통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이어진다. 겨울엔 물의 온도가 낮아 어획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쉰다. 따라서 겨울철엔 발통의 말목은 그대로 두고 그물과 대발은 철거한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다시 설치해 늦가을까지 조업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죽방렴은 부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부두를 떠난 배는 보통 5~10분 안에 죽방렴에 도착한다. 죽방렴에 도착하면 어부는 배를 말목에 고정시킨 뒤 발통문을 열고 들어가 작업을 한다. 발통문은 발통 한쪽에 설치한 작업용 출입문을 말한다.
어부는 곧바로 물고기를 퍼 올리는 게 아니라 제일 먼저 발통 안에 들어온 쓰레기나 불가사리·해파리 같이 해로운 생물 등을 족대로 건져낸다. 그 다음 말목에 매달아 두었던 후리그물을 펴서 사목 옆의 말목에 세워서 묶어두고, 나머지 한쪽으로 발통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고기를 모은다. 그 다음 죔줄을 잡아당겨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이어 후리그물 안의 물고기를 족대로 퍼서 둥우리에 담으면 된다. 잡힌 물고기의 양이 적을 때는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지만, 많을 때는 2~3명이 분업하는 경우도 있다.
죽방렴은 멸치를 잡는 어법이어서 이 멸치를 노리는 갈치 학꽁치 붕장어 도다리 농어 감성돔 숭어 보리새우 등 다양한 종류가 들어온다. 이 중 멸치가 80% 정도 차지한다. 수십년 전엔 조기 대구 광어도 많이 잡혔다고 한다. 부두에 도착하면 온가족이 모여 잡아온 물고기 선별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회감으로 인기 좋은 우럭, 광어도 모두 '잡어'일 따름이다.
'건멸치의 꽃' 죽방렴 멸치
이렇게 선별한 멸치는 크기별로 나눠 소금물에 삶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소금물의 염도를 맞추는 일이다. 봄 가을처럼 멸치가 크거나 기름진 경우는 여름 멸치보다 더 많은 소금물을 사용한다. 소금의 품질과 농도, 이것이 바로 죽방렴 어장주들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비법이다.
가마솥에 멸치를 삶은 뒤 산대미라 부르는 고기 건조발을 가지고 멸치를 떠서 부둣가 건조장에 말린다. 건조 작업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너무 말리면 부스러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덜 말리면 보관 과정에서 쉽게 썩기 때문이다. 멸치는 삶은 뒤 바로 자연 햇살에 말리는 게 최고다. 그러면 하루만에 '건멸치의 꽃'이라는 죽방렴 멸치가 탄생한다.
연중 잡히는 멸치의 종류도 다르다.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사이의 봄철엔 주로 액젓을 만드는 데 이용되는 큰 멸치가 많이 잡힌다. 이후 5월 초엔 가장 작은 치어인 소멸(시레기), 보름 정도 지나면 3~4cm 정도의 베젱이, 6월부터는 7~8cm의 중멸(중사리)이 많다. 윤택 있고, 맛이 좋은 중멸은 멸치의 왕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어부들은 멸치를 유자망으로 많이 잡는다. 하지만 그물로 잡는 과정에서 멸치의 비늘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어 신선도나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죽방멸치는 어장에서 뜰채로 살짝 떠서 싱싱한 상태로 곧바로 가공하기 때문에 상처가 하나도 없고, 맛도 뛰어나다.
죽방멸치는 생김새가 납작하고, 은백색의 빛깔과 금색을 띠고 있어 여느 멸치와도 구분된다. 이렇듯 비늘 하나 상하지 않고 곱게 건져 올린 죽방렴 멸치는 물살이 빠른 곳에서 잡힌 것들이라 기름기가 적고 쫄깃하며 비린내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당연히 일반 멸치보다 몇곱절이나 비싼 값에 팔린다. 죽방멸치는 대부분 서울의 유명 백화점으로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죽방렴의 어획량은 나날이 줄고 있다. 주민들은 해안 간척, 강진만의 정치망, 그리고 화력발전소·제철소 등으로 인해 수질오염과 수온이 상승해 어자원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 최근 대형 다리가 많이 생기면서 교각 때문에 조류의 흐름이 바뀐 까닭도 있다.
그래도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디지털 시대에도 원시어업 죽방렴은 아직 건재하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남해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데도 큰 역할도 하고 있으니 남해를 빛내는 소중한 보물임이 틀림없다. 요즘도 싱싱한 멸치와 갈치들이 뿜어대는 날카로운 은빛은 죽방렴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 저녁 무렵 붉은 빗살을 긋는 죽방렴 일몰 풍광은 덤이다. 그래서일까. 해양민속학자 주강현 선생은 죽방렴을 '남해안이 살아있다는 마지막 자존심'이라 표현했다. 맞는 말씀이다.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비룡 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돚통영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사천 나들목→3번 국도→사천시→창선돚삼천포대교→창선교→지족해협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숙박 죽방렴이 있는 창선면 지족리에 갯마루펜션(055-867-3887)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지족해협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의 어부방조림 주변에 남송가족호텔(055-867-4710)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남해편백자연휴양림(055-867-7881)은 삼림욕을 곁들일 수 있는 남해군의 대표적인 숙소다.
●별미 전통 어업방식인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와 갈치가 별미. 특유의 향이 은근하고, 담백함이 그대로 살아있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멸치회돚갈치회는 우리가 흔히 먹는 회가 아니라 회무침이다. 갈치는 가을이 돼야 잡히기 시작하므로 여름엔 맛볼 수 없다. 창선교 주변에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회와 갈치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죽방렴횟집(055-867-7715), 우리식당(055-867-0074)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멸치회무침 소(2~3인) 3만원, 대(4인) 4만원.
●참조 남해군청 대표전화 055-860-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