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파리에서 증권거래업자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1883년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난관에 부딪혔지만, 가난한 시절 만난 반 고흐와 프랑스 남부지방 아를에서 생활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그러나 고흐와의 잦은 다툼으로 결국 3개월 만에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으로 돌아간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이 결별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고흐와 헤어진 고갱은 차츰 인상파에서 벗어나 강한 원색의 색면이 두드러지는 상징주의 미술을 시도해 나갔고, 근대화된 서구의 물질 만능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홀연히 타히티로 떠나게 된다. 타락한 문명에 속박되지 않은 순수한 감성을 위해서 고갱은 삶의 마지막 10년을 남태평양에서 보냈다.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oil on canvas, 113.7×87.6㎝, 1892,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아 오라나 마리아>는 고갱이 타히티 시절 초기에 그린 것이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는 타히티 원주민 말로 "나는 마리아를 경배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어린 예수와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에게 두손을 모아 경배하는 두여인을 그린 종교적인 그림으로, 고갱은 서양 미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성모 마리아를 재해석했다.

그림 속의 마리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타히티 여인이 허리에 두르는 파레오를 걸치고 어린 예수를 무등 태우고 있다. 성모자와 천사들이 성모 마리아를 경배하는 장면은 전통적인 서구 기독교 문화의 도상으로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고갱은 문명에 노출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표현하고자, 그들의 모습을 타히티 원주민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인류의 근원을 타락한 서양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인 남태평양 타히티 원주민들에게 찾고자 했다.

고갱은 자신의 그림에서 원시적인 감정과 상상력이 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여기고 집중했다. 특히 색채에 주목했던 그는 색채효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원근법이나 명암법의 사용을 완전히 무시했다.

또 감각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평면적인 형태와 자의적으로 사용한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단순한 인물형과 율동적인 윤곽선, 그리고 상징적인 요소는 원시미술과 일본미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는 이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비유럽적인 색인 분홍색과 노란색을 이용해 순수한 자연 앞에서 발휘한 상상력으로 신비한 꿈과 노스텔지아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바람은 그림 속에서 종교적 경건함과 함께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