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눔/'돼지털 할머니' 류양선

 
 "꽃다발은 뭐하러 사! 돈 아깝게"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거나,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돈의 소중한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선뜻 내놓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돌고 돌기 때문에 '돈'이라고 한다는 가벼운 비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진 것을 움켜쥐고 있게 되면 부의 가치가 퇴색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겠지만, 결코 보람된 삶이 아니라는 얘기일 수도 있다. 또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몇해 전, 한 TV광고를 통해 디지털에 대한 개념을 친근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할머니가 있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디지털 세상이잖아요"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할머니가 "뭐? 돼지털?"이라고 반문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함께 '생활 속으로 파고 드는 디지털'을 실증할 수 있게 해준 광고였다.

 이 광고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류양선 할머니를 부자학연구회 주최 제2회 봉사부자상 시상식에서 만났다.

 노량진수산시장 한켠에서 젓갈을 팔며 수익금 중 일부를 꼬박꼬박 떼어 15년 넘게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할머니. 그동안 기부한 액수만도 수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가난으로 배우지 못하는 불우한 학생들에게 소중하게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부천사' 류양선 할머니를 만나 세월보다 더 깊고 긴 얘기를 들어 보았다.
 
 작은 정성으로 얻는 큰 보람
 류양선 할머니의 기부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는 지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2월이면 충남 서산 서령초등학교로 200만원 상당의 초등학생용 한자교재를 보냈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컴퓨터에 빠져 사는 어린 새싹들에게 한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한자에 담긴 옛 선인들의 지혜를 깨우쳐주겠다는 할머니의 뜻이 담긴 책이다. 어린 학생들의 한자 외우는 소리가 울려 퍼질때 마다 할머니는 매년 작은 정성으로 큰 보람을 얻는 기분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통큰 기부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도 했다. 바로 1998년 한서대에 10억원 상당의 건물과 임야 등을 전달했고, 2001년 광고에 출연했을 당시 받은 출연료 전액은 불우학생들에게 기부한 것이 좋은 예다.

 할머니는 2006년 1월에는 그동안 한자교재를 보냈던 서령초등학교에 조선왕조실록 400권을 내려 보냈다. 한자와 역사를 바로 알아야 세상을 바로 배울 수 있다는 할머니의 신념이 담긴 선물이었다. 또 그해 9월 1억원 상당의 땅 1500여평을 한서대의 학교발전용지 목적으로 기부하기도 했으며, 2008년에는 땅과 함께 2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1600만원을 나눠주기도 했다.

 할머니의 기부는 초등학교와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로도 넓어졌다. 2009년 고등학생 20명에게 한서인재육성 장학금을 수여한 것이 그것이다.
 
 나눔은 큰 배움이다
 할머니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다. 서령초등학교가 모교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하게 된 때는 젓갈가게가 자리를 잡은 뒤 부터다. 어릴 때부터 친정어머니에게 '남에게 베푸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며 보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할머니는 장사 초기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어머니의 '베푸는 삶'을 한시도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할머니가 두살 때부터 이웃은 물론 다른 면 소재지 마을로도 바느질을 가르치러 다니셨다고 한다. 그 덕에 젖배를 굶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컸으면 됐지. 우리 어머니 덕에 많은 사람들이 바느질을 할 수 있었잖아"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공부를 더 이상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곧잘 상장을 받아왔던 우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만약 그 때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지금쯤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할머니가 유독 학생들을 돕는 이유도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 때문이다. '내가 못 배웠으니 너희라도 열심히 배워 잘 살아라'하는 심정이다. 할머니는 요즘 '나눔도 배움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할머니처럼 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학생들은 할머니를 대신해 공부를 하고, 할머니는 그 학생들을 통해 보람을 얻고 희망을 보는 것이다.
 
 할머니를 춤추게 하는 편지
 조건 없는 기부임에도 때론 할머니를 춤추게 하는 것이 있다. 장학금을 받거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올 때다. '할머니 덕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편지가 집에 무려 1만5000통이나 쌓여 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나 어려운 일이 생겨 마음이 흔들릴 때면 어김없이 편지함을 열어 아무 편지나 꺼내들고 읽는다고 한다. 수십번을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할머니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마법의 편지'인 셈이다.

 이렇듯 적어도 1만5000명의 학생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할머니이지만 정작 할머니의 생활은 검소 그 자체다.

 할머니의 기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방송에 몇차례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할머니의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본 양말공장 사장님이 양말 한박스를 보내준 적도 있다. 양말뿐만이 아니다.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집안의 형광등은 밤에도 좀처럼 켜지는 법이 없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이 할머니와 함께할 뿐이다. 장사 초기인 17년 전부터 할머니와 함께 한 낡은 앞치마도 '한푼이라도 더 아껴 학생들에게 나눠줘야지'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변함없이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는 '편한 곳에서 편하게 살고 싶다'거나 '남을 도와주는 삶이 지겹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단지 '죽어서까지 돕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시신기증까지 염두에 둔 할머니는 "어차피 죽을 텐데 살아서 뭐 때문에 욕심을 부리느냐"며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젓갈을 팔 것이고 그 수익금은 모두 학생들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꽃다발은 뭐하러 사! 이 돈으로 우리 학생들이나 도울 것이지." 봉사부자상을 수상하고 내려오며 던진 한마디가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평소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말이었다.

 할머니가 계셔서 세상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기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한희준 대학생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