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블루스-고시촌 24시

 
 청춘과 꿈의 무한지대

    "죽을 각오로 공부한다"

 
 올해 들어 외무고시와 행정고시 폐지 논란 등 국가고시와 관련된 이슈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0월23일 1차 시험이 치러진 공립 중등교사 임용고시 역시 논란이 되었다. 임용고사 한달을 앞두고 발표된 신규 임용 정원이 작년에 비해 급격히 줄고, 일부 과목은 아예 TO가 나지 않아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진 것. 게다가 시험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교육과학기술부가 갑작스러운 교원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원서는 추가로 접수받지 않겠다고 하여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고시생들은 이 같은 혼란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시험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차 시험의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은 노량진 고시촌. 급격히 차가워진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뜨겁기만 한 그곳에서 고시생 3명의 24시간을 밀착 취재했다.
 

 새벽 6시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지영(24)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자취방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생전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살게 된 자취방은 처음에는 자유와 낭만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외로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엄습하는 적막감에 한숨을 쉬던 그녀는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고시학원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하지만 강의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달콤한 새벽잠을 포기해야 한다. 자리 경쟁이 임용고시 경쟁 못지않게 치열하다고 혀를 내두르며 지영씨는 아침도 거른 채 고시학원으로 달렸다.
 
 오전 11시 반
 졸음을 쫓으려고 마신 자판기 커피가 빈속을 쓰리게 해 지영씨는 힘든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국어 교사를 지원한 지영씨는 오전에는 교육학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국어 전공 수업을 듣는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학원 강의실에만 앉아 있는 셈이다. 너무 피곤해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것만 같지만, 강의실을 가득 채운 다른 고시생들을 보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후 1시
 지영씨는 학원 점심시간에 고시식당으로 향했다. 노량진에는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지만 식사를 거의 밖에서 해결하는 고시생들에게는 식비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그래서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고시식당에서 한달치 쿠폰을 끊어 식사를 해결한다. 고시식당은 한끼 식사에 3500원이지만 쿠폰을 끊는 경우 하루 세끼 17만원 정도로 저렴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저렴한 가격대에 비해 꽤 맛있고 푸짐한 식단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 밥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같이 교육학 수업을 듣는 박모(27)씨가 보인다. 수업시간에 놓친 문제풀이를 물어보니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지영씨는 다시 학원으로 들어갔고 박모씨는 오전의 교육학 수업이 마지막이라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오후 3시  
 박모씨는 중등 체육교사를 준비하고 있다. 체육교사의 경우 교육학,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실기까지 병행해야 해서 더 초조하기만 하다. 독서실에서 교육학 공부를 하고 있던 그는 문득 아침에 세탁기를 돌려놓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허겁지겁 자취방으로 가 세탁물을 널고 나서 나른해진 몸을 잠시 뉘었다. 선배와 함께 살고 있는 원룸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20만원을 내는 월세집이다.

 노량진 방값은 보통 20만원대부터 5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노량진 입성 초기엔 월세 40만원인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던 그도 결국 생활비 부담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 집은 성인 남자 두명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지만, 어느새 살림꾼이 된 그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 있어 꽤 아늑해 보였다.
 
 오후 5시
 다시 독서실로 돌아가는 길에 박모씨는 은행에 들렸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던 그의 얼굴에서 깊은 걱정이 스쳐지나간다. 그는 대학 졸업 후 ROTC로 복무하면서 월급을 고박꼬박 모아놓은 돈으로 현재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방값 20만원에 고시식당 월식비 17만원, 독서실비 21만원, 고시학원비 30만원, 통신료 등 기타 생활비 30여만 원 등 한달에 들어가는 생활비가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2년 동안 모아둔 돈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버텨보자고 다짐하면서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저녁 7시 반
 저녁 식사를 위해 고시식당에 간 박모씨는 그곳에서 친한 후배인 정현(26)씨를 만났다. 박모씨와 정현씨는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함께 운동을 하면서 위로하는 사이다. 정현씨는 올해 졸업하고 중등 체육교사를 준비하다가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9급)인 소년원 체육교사로 지원 분야를 변경하였다. 소년원 체육교사 역시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므로 그도 임용고시 고시생인 셈이다. 한해에 전국에서 두명 정도를 뽑기 때문에 경쟁률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하루에 네시간 정도 잔다는 그는 죽을 각오로 이번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체육교사인 아버지를 보며 어릴 때부터 체육교사의 꿈을 키워온 정현씨는 학생의 입장에 서서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소외된 소년원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정현씨는 소년원 학생들이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다며 웃었다.

 박모씨와 정현씨의 식사가 끝나갈 즈음, 지영씨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고시 학원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 그녀는 얼른 식사를 마치고 독서실에 가봐야겠다며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밤 12시
 독서실을 나온 지영씨는 좁은 고시촌 골목들을 지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해서 베개에 머리만 갖다 대도 잠이 들 것 같았지만, 다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 필기한 공부 내용을 정리하는 지영씨의 뒷모습이 작지만 당차 보였다.

 기자가 노량진 고시촌에서 보낸 하루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시생들의 일상과 그들이 말하는 꿈, 여러 고민들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전쟁터이고, 또 누군가에겐 감옥 같은 곳으로 표현되는 노량진.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한, 그곳은 청춘과 꿈의 무한지대였다. 1차 시험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 그들은 2차 시험을 준비하며 오늘도 밤을 지새우고 있다.
 
<고시생의 말, 말, 말>
 
 *나는 이번 임용고시에 사활을 걸었다. 같이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 중에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런 동기생들을 보면서 사실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만약 이번 임용고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여기 노량진에는 나이 많은 고시생들도 꽤 많다. 오죽하면 '3수는 기본, 4수나 5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1차 시험에서 떨어지면 또 다시 일년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것에 비해 임원 정원은 해마다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이 든다....박모씨
 
 *사람들은 임용고시의 경쟁률이 대기업 입사 경쟁률보다 낮다고들 하지만, 사실 실질적인 경쟁률은 훨씬 높다. 임용고시를 볼 자격증이 주어진 사람들만 시험을 치므로 체감 경쟁률이 더 센 것 같다. 그리고 최근 들어 나이제한이 사라진데다가 교육대학원, 비사대 교직 이수 등 임용고시를 볼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한없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정부 들어 전문 강사를 채용해 계약직을 늘리고 정규직을 줄이겠다, 임용고시 칠 자격증 없어도 단기 연수로 교직 자격증을 주겠다 등 임용고시의 실효성을 낮추는 정책을 추진시키고 있다. 나는 교수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과 단기 연수로 자격증을 딴 사람은 분명히 차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정현씨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캠퍼스를 벗어나기 전 학생 신분일 때 여유 있게 준비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의 수업과 교과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길 바란다. 또한 컴퓨터 자격증, 한자 급수 자격증 등의 가산점은 없어졌으나, 부복수 전공의 경우엔 가산점을 주니 복수 전공을 신청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방학 기간 중 직접 노량진에 와서 미리 경험을 하고 철저하게 몸으로 체득한 뒤 준비할 것을 당부한다....지영씨
 
 안혜란 대학생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