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서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죠. 워크샵을 통해 퍼(fur)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고, 맘껏 작업도 할 수 있었어요. 작업하다 지치면 스칸디나비안 고유의 멋진 전망이 넓게 펼쳐진 그림같은 하우스 풀장에서 휴식을 취했죠."
뉴욕에서 활약 중인 디자이너가 얼마 전 들려준 말이다. 나는 물었다.
"그 모든 게 무료로 제공됐나요?"
"그럼요, 그들이 초대했으니까요. 그뿐이 아니죠. 컬렉션 아이템 제작에 들어가는 최고급 퍼 원단도 무상으로 제공하죠."
나는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엄청난 혜택을 제공하죠?"
"퍼에 대한 혐오감, 문제의식 같은 게 팽배해 있잖아요. 그걸 깨뜨리고 싶은 거죠. 유망한 디자이너들을 초청해 막연한 거부감도 해소하고, 잘 관리되고 있는 농장도 보여주는 거죠. 우리는 윤리적으로 모피를 만든다. 동물들이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모피를 제공하게 해 준다."
세계 최고의 모피원단이 만들어지는 곳은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의 국가들이다. 혹독한 추위라는 기후적 특성 때문에 모피를 활용한 복식이 발달했고, 사육이 가능해지면서 대규모 농장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들 농장들은 조합을 만들고 그 산하에 마케팅 전문회사를 운영하면서 세계시장 개척에 나섰다. 뉴욕과 런던의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모피에 대한 서구사회의 반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개고기 따위는 견줄 바가 못 된다. 세계적인 모델인 나오미 캠벨은 펜디의 패션쇼 무대에 모피코트를 입고 섰다가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 활동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멋모르고 모피코트를 입고 외출에 나섰다가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온갖 욕설과 항의, 나아가 폭행까지 당했던 한국 유학생들의 웃지 못할 경험담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피업체들과 패션하우스들은 모피를 포기하지 못한다. 우선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모피만큼 풍부한 볼륨감과 따뜻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소재를 포기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든다. 더 중요한 건 물론 이윤의 논리다. 평범한 제품도 기백만원은 예사고 여기에 명품로고라도 박히면 화폐단위가 바뀐다. 그래서 이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매우 윤리적인 과정을 거쳐 모피를 얻습니다. 동물들은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러니 죄책감 따위 잊고 맘껏 입으세요."
과연 그럴까? 코펜하겐의 스폰서십 워크샵에 참가했던 영국 디자이너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곳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았어요. 동물들은 비좁고 갑갑한 우리에 갇혀 있었죠. 뛰어다닐 수도 없고 전혀 자연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죠. 업체들은 그 정도도 윤리적이라 말할 지 모르지만, 글쎄요, 그건 당신이 윤리적인 상태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죠."
가장 대표적인 회사인 Saga fur의 관계자는 디자이너들에게 스폰서십을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컬렉션 무대에 우리 제품이 올라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미지가 생겨나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사겠죠. 런던과 같은 도시는 세일즈 측면에서가 아니라 디자이너들의 재능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죠. 홍보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들의 무대에 올린 후 모피에 대한 경각심이 덜하면서 구매력이 큰 아시아시장을 노리겠다는 노골적인 전략인 셈이다.
한강의 세빛둥둥섬의 오프닝 행사로 펜디의 모피 컬렉션이 열리는 것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서구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고수익 패션아이템의 아시아마켓 공략. 그렇기 때문에 여론의 포화도 무섭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고가의 펜디 모피를 살 사람들은 핏대 높이는 장삼이사들이 아니니까.
어쩌면 '윤리적인' 모피가 소개되는 장소로, 한강을 자연상태로 복원하겠다는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가진 토건사업의 아이콘, 세빛둥둥섬이 딱 맞을 지도 모르겠다. 둘 다 모순적 존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까.
윤리적인 모피와 한강 르네상스
에코라이프
김진화 오르그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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