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은 매년 10% 이상 매출신장을 기록해 패션업계에서 ‘알짜 기업’으로 통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4474억원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섬이 매각가격으로 제시한 금액은 5000억~6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정재봉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 34.6%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섬의 시가총액(5542억원)과 맞먹는다.
윤효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섬의 높은 매각가격에 대해 “한섬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윤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섬이 보유한 5개 남녀 브랜드의 가치가 현 시가총액에 반영돼 있지 않다”며 “현 주가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섬의 높은 매각가격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김경기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섬은 디자인의 독창성이 없는 카피브랜드일 뿐”이라며 “저가의 글로벌 SPA 브랜드들과 비교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SPA는 자라, 망고, H&M, 유니클로 등 유통과정을 생략하고 싼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브랜드다.
한섬의 매각 호가는 최근 휠라코리아가 세계 1위의 골프업체 아큐시네트를 인수한 금액과 비교해도 과하다는 지적이다. 휠라코리아는 미래에셋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는데 이때 인수가격이 12억2500만 달러(한화 약 1조3236억원)였다. 아큐시네트는 2010년 매출액 12억4200만 달러와 영업이익 8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또 “SK네트웍스가 한섬을 가진다고 해서 패션업계 선두권으로 부상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분석했다. SK네트웍스는 한섬 인수에 나섰을 때, 두산이 매각한 폴로를 함께 사들이려고 했다. 이럴 경우 SK네트웍스는 자사가 가진 DKNY, 토미힐피거, 오브제 등과 함께 백화점에서 2개 층을 장악할 수 있었다.
패션업계는 브랜드 성공의 잣대를 백화점 진출 여부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폴로 본사가 파트너 없이 한국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SK네트웍스의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SK네트웍스가 한섬 하나만 인수해서는 기대하는 시너지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예측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SK네트웍스 내부적으로도 반대의견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애널리스트는 “한섬 인수는 오너의 뜻일 뿐, 내부적으로는 80%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SK네트웍스에 한섬은 더이상 패션업계를 장악할 유일한 카드가 아니다. 한섬 대신 일본 지진으로 가치가 떨어진 이태리 명품 브랜드에 눈을 돌리는 것도 카드가 될 수 있어 SK가 이를 검토 중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격이 비싼 한섬 M&A를 주저하는 건 다른 패션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패션 기업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한섬 인수를 고려했지만 가격 부담 때문에 일찌감치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업체 NFC를 인수하며 적극적으로 시장 장악에 나섰던 롯데쇼핑 역시 비싸다는 이유로 인수전에서 한발 물러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