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사이에 솟은 대야산(931m)은 정상 주변의 암봉이 매우 돋보이는 산이다. 명산이 즐비한 문경에서도 그 아름다움은 여느 산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사방으로 뻗어내린 경치 수려한 계곡엔 넓은 반석과 크고 작은 폭포도 많다.
무더위 느낄 틈도 없는 시원한 계곡
대야산 주변은 예로부터 금강산에 비길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해서 소금강이라고도 불렸고, 신라 말기엔 고운 최치원이 머물렀다 해서 선유동(仙遊洞)이라고도 했다. 주민들은 백두대간 분수령 서쪽은 괴산 선유동, 동쪽은 문경 선유동이라 구분해서 불렀는데 <대동여지도>엔 괴산 선유동을 내선유동, 문경 선유동을 외선유동이라 구분해서 적고 있다.
옛날부터 대자연의 정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은 문경의 외선유동을 사람 살만한 곳이라면서 편안히 여겼다. 조선의 손꼽히는 예학자였던 우복 정경세(1563~1633년)는 외선유동 산수의 기묘함과 수려함에 감탄해 '가이 완장운(可以 浣腸云)'이라 했다. 골짜기가 탁 트여 창자가 시원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완장(完章)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전해오는 말로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지사(地師)로 종군했던 풍수지리학자 두사충(杜士沖)이 백두대간을 넘어 이곳으로 들어서다 선유동 경관을 보고는 "창자가 시원하다"며 완장(浣腸)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문경 선유동은 하얀 암반이 계곡을 따라 1.7km에 걸쳐 펼쳐진 명승지다.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의 아홉군데 경승지를 따로 선유구곡이라 부른다. 관란담 위엔 손재 남한조가 정자를 짓고 글을 가르쳤다는 옥하정터가 있다. 도암 이재는 용추동에 둔산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학천정은 도암을 추모하는 후학들이 그의 덕을 기려 1906년에 세운 정자다. 학천정 앞 바위엔 최치원이 쓴 것으로 알려진 '선유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선유동은 이렇듯 주변 분위기가 제법 고풍스럽기도 한데, 최근에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여기서 촬영했다. 이 드라마는 조선 영·정조 시대에 실존했던 조선 최고수 무사인 백동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선유동에서는 백동수와 여운의 아역들이 장용위에서 무술훈련을 하면서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선유동 상류엔 용추폭포가 있다. 선유동 위쪽의 벌바위마을을 지나 대야산 쪽으로 800m쯤 올라가면 승용차 수십대 주차할 수 있는 돌마당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암수 두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가진 용추폭포가 반긴다.
상단 폭포 아래엔 하트형으로 깊게 파인 윗용추가 있다. 여기서 잠시 머물던 계류는 다시금 매끈한 암반을 미끄럼 타듯 흘러내려 아랫용추로 흘러간다. 폭포 양쪽 바위에 있는 비늘 모양의 흔적은 용이 승천할 때 남긴 용비늘이라는 전설이 남아있다.
가은 갈천리는 후백제 세운 견훤의 고향
선유동과 용추폭포가 있는 문경 가은읍은 오가는 길에 볼거리가 많은 고을이다. 가은 갈천리는 후삼국 시대 신라·고려와 자웅을 겨루던 후백제 견훤의 출생지. 갈천리 아차마을 금하굴엔 견훤의 출생에 얽힌 유래담이 전한다. 이 유래담에 따르면 동네의 아리따운 규수가 동굴의 큰 지렁이와 관계를 맺어 견훤이 태어났다고 한다. 2002년 마을에 숭위전(崇威殿)을 세우고 매년 견훤의 향사를 지낸다.
견훤과 이런 사연이 있는 가은은 20세기 중반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탄광 고을이었다. 지질학적으로 문경탄전(聞慶炭田)에 속하는 문경은 1970년대만 해도 탄광이 40여개에 이를 정도였고, 광부만도 1만명을 헤아렸다. 당시는 지나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호시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탄광은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4년 가은의 은성광업소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자 가은을 포함한 문경 전체의 경제는 급속하게 쇠락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2만3000명이나 되던 가은의 인구도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기찻길을 이용한 가은의 철로자전거, 폐광 자리에 들어선 문경석탄박물관 등은 관광도시로 거듭나려는 노력의 산물들이다.
가은읍에서 선유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가은 완장리엔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1858~1908년) 생가와 기념관도 있다. 1858년 이곳에서 태어난 이강년은 한말 기개가 높았던 의병장.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는데, 1884년 갑신정변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문경의 동학군을 지휘하기도 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이듬해 1월 가은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이어 제천으로 유인석을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은 뒤 유인석 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 등지에서 활약했다.
1907년 일본의 침략정책이 더욱 노골화되자 이강년은 영춘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에서 봉기한 민긍호 부대와 합세해 충주를 공격했다. 그 후에도 가평, 인제, 강릉, 양양 등지에서도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1908년 청풍의 금수산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체포된 뒤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 나들목→3번 국도(우회전 문경시 방면 1.5km)→901번 지방도→가은→922번 지방도(괴산 방면)→문경석탄박물관→이강년 생가→선유동→대야산자연휴양림 <수도권 기준 2시간30분 소요>
●숙박 용추폭포 옆에 자리하고 있는 대야산자연휴양림(054-571-7181)은 더위를 잊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양 공간이다. 숙박료는 40㎡평형(6인 기준) 비수기·주중 5만원, 성수기·주말 8만5000원, 49㎡평형(8인 기준) 6만~9만8000원. 입장권 어른 1000원, 주차료 승용차 3000원. 용추폭포 입구엔 돌마당(054-571-6542), 벌바위가든(054-571-5691), 대야산청주가든(054-571-7698) 등 민박을 겸한 식당들이 많다. 토종닭백숙, 토종닭볶음, 도토리묵 등을 차린다.
●참조 문경시청 054-552-3210, 문경석탄박물관 054-550-6424, 문경철로자전거 054-553-8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