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의 대가 폴 새뮤얼슨이 한 농담이라고 한다. 시장이 원래가 '걱정도 팔자'란 얘기다.
지금이 딱 그렇다. 세계경제의 60~70%를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이 같이 침체에 빠질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뉴욕증시는 한때 고점대비 18%나 빠졌다. 한국, 프랑스, 독일 등은 20%이상 주가가 빠져 약세장까지 갔다 왔다.
한때 하반기 미국경기회복을 목소리 높여 외치던 월가는 이제 전망치를 낮추기 바쁘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잘해야 1%가 될 것이란 게 컨센서스가 돼가고 있다.
주가에 이어 경제심리지수도 망가졌다. 이는 정말 미국경제에 더블 딥(경기재침체)이 올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8월 미국 필라델피아 지역 제조업지수는 -30.7을 기록, 월가를 경악케 했다. 성장률이 -4%~-5%나 되던 침체기 때나 나오는 수치였던 탓이다. 8월 로이터/미시건대 소비심리지수는 54.9로 30년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뉴욕증시가 3일 연속 오른 24일만 해도 S&P500 변동성지수(VIX)는 36으로 마감했다. 이 지수는 30 이상이면 공포권으로 평가받는다. 이달 4일 공포권에 진입한 후 한번도 30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30정도 수치면 S&P500 지수가 대략 아래위로 3~4% 움직일 수 있는 거리다. 증시가 바닥에서 올라왔지만 투자자의 공포는 크게 식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적어도 미국경제에 관한 한 더블 딥이 올 것이란 분명한 신호가 없다. 우선 경기선행지수가 지속적으로 상승중이다. 망가질 운명의 경제에서 선행지수가 높아지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7월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0.5% 늘면서 4개월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또 7월 산업생산도 올 들어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7월 미국 내구재 주문은 전월비 4% 늘어나 업계 예상증가율의 2배에 달했다. 운송장비와 군수품을 제외한 핵심자본재 주문이 예상 밖으로 1.5% 감소해 미국 제조업 경기 앞날에 먹구름을 던지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더블 딥 조짐으로 보기는 이르다.
또 기업 및 소비자심리 지수가 추락했다는 것만으로 경제를 비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심리지표가 성격상 주가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특히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의 경우 아예 종목이라고 할 정도로 증시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때문에 경제동향지수로서 적합성도 의심받고 있다.
새뮤얼슨 통찰처럼 주가가 급락할 때 꼭 경기침체가 따라와야 한다는 법도 없다. 가령 1966년 ,1998년 그리고 1987년이 대표적이다.
최근 주가급락은 감정적인 데가 많다. 마치 총성이 울리지 않았는데 피난부터 갔다고 할까. 투자자 상상 속에서 유럽은행은 일찌감치 파산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실제 은행파산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이 같은 공포 저변엔 경제가 정부 도움 없이 홀로설 수 없다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뒤에서 받쳐주는 곳이 없어졌다는 것 자체를 시장은 더 두려워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양적완화(국채매입에 의한 유동성공급)를 끝내고 난 뒤 더블 딥 우려가 커지고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일종의 금단증상이다.
시장은 또한번 연준의 유동성 모르핀을 애타게 찾고 있다. 그러나 연준이 지금 그 주사를 놔줘야할 시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안팎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연준이 시장의 투정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느냐에 따라 시장의 향배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