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두 번째로 네팔에 다녀왔다. 2년만에 다시 찾은 카트만두는 더 시끄럽고, 지저분해져 있었다. 공기 속에는 흙먼지와 매연이 가득차서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고, 도로는 여전히 혼잡했으며, 쓰레기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모든 여행자들이 거칠 수 밖에 없는 수도 카트만두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설산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첫번째로 갔던 네팔에서 만난 이들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다 귀환한 노동자들이었다. 한국에서 십년 이상 일을 하다, 차별과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움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 분들은 고향에서도 돈 버는 일보다 사회적 문제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분들은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이라는 NGO를 만들었고, 이주노동자 및 빈곤지역 지원사업을 하고 있었다.
2009년에 이분들과 함께 카트만두 인근의 쁘러거티라는 마을에 방문했었다. 쁘러거티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피난 온 이들이 강변에 천막을 치고 거주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이 마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 우기가 되면 집 안까지 물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당시에도 집은 집이라기보다 폐허같았고, 아이들은 길바닥의 흙탕물에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그 스산하고 우울한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과 한국의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이 쁘러거티 마을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흙을 퍼날라 지대를 높이고,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매일 한 끼의 식사라도 제대로 먹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에는 어느새 300명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고 지역 전체가 불법거주 상태인데도 정식 학교로 인가도 받았다. 집을 수선하고, 주민들을 조직하고, 정부와 싸우는 일들을 통해 이곳은 3,000명이 거주하는 큰 마을로 변했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자립할 수 있는 조직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오토바이 정비 센터인데, 카트만두에 있는 50만대의 오토바이에 착안하여, 빈곤층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정비 및 오토바이 세차를 통해 돈을 버는 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계속 새로운 청년들을 교육시키고, 그 청년들은 정비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거나 새로운 정비소를 만들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사회적기업이다.
NHN 임직원의 지원금은 또 다른 사회적기업을 위해 쓰였는데, 정비센터가 청년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여성을 위한 것으로, 재봉 교육을 수료한 여성들을 위한 공동 작업장과 상품 판매 매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직은 생산 초기 단계에 있지만 곧 네팔의 공정무역 조직들과 제휴하여 매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종의 마이크로 크레딧 시스템도 도입하여 일인 창업을 하려는 여성들을 위한 대부도 진행할 계획이다.
재봉 작업장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 분들은 이 일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생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같이 갔던 네이버 임직원들은 개장식에서 아직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상품들을 한아름씩 사들고 나왔다. 또 다른 작은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 사업의 총 책임자인 쉬디버럴 대표는 우리를 공항으로 배웅하면서 이주 노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1994년 네팔 신문에 실린 기사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손가락이 잘려나간 네팔 이주노동자 120명의 사진이 한 면을 꽉 채웠다고 했다. 작업 속도를 높이려고 센서를 꺼버리고, 체불임금을 달라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내쫓던, 슬픈 한국의 자화상은 비행기로 여섯시간 반 거리의 네팔에서도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나 쉬디버럴씨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부끄러운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쉬디버럴씨와 씩씩하게 악수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선 후 비행을 하는 내내 그의 뒷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부끄럽지만 따뜻한, 네팔의 행복.
네팔의 행복
에코라이프
변형석 트레블러스맵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