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IMF 외환위기 전에 직장을 다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제한서'라면 단번에 5대 은행을 떠올린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중 4개 은행의 이름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외국계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가 인수한 SC제일은행만이 행명에 '제일'을 남겨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행명을 바꿀 예정이서 '조상제한서'는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은행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행의 변화무쌍한 역사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은행간 통폐합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4대 은행으로 일컬어지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은행은 이러한 M&A로 외형적인 몸집도 불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M&A로 불어나면서 다양한 출신성분 때문에 인사철만 되면 '○○은행 출신' 인사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또한 인수주체와 존속법인의 문제, 합병의 방법 등으로 인해 해당 은행의 역사도 헷갈리는 부문이 많다. 국내 은행계를 리드하고 있는 4대 은행의 알쏭달쏭한 역사를 되짚어 봤다.
◇ 국민은행 : 사라진 옛 국민·주택은행
지난 11월1일 국민은행은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올해 10주년 기념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세계적으로 부는 금융회사에 대한 반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창립행사를 조용하게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1월1일이 현 국민은행의 실질적인 역사가 아니라는 이유도 반영됐을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해는 국민은행 창립 10주년이 아닌 통합 10주년이다. 올해 10주년은 2001년 11월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을 기념하는 자리다.
국민은행의 근간이 되는 은행은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다. 옛 국민은행의 역사는 1963년 2월부터 시작된다. 또 옛 주택은행은 1967년 3월에 설립됐다. 두 은행 모두 반세기가 흘렀다. 그러나 반세기의 역사를 버리고 '10년'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국민은행은 무려 5개 은행이 합쳐졌다. 옛 국민은행은 1998년 6월 대동은행을 자산부채이전(P&A)방식으로 인수한다. 같은해 12월에는 장기신용은행을 인수합병했다. 주택은행은 1997년 민영화 수순을 거친 후 1998년 부실화된 동남은행을 자산부채이전(P&A)방식으로 인수한다. 현 국민은행 본점이 있는 여의도 사옥은 옛 주택은행 본점이었으며, 명동에 있는 KB금융지주 사옥은 옛 국민은행의 본점이다. 또 서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사옥은 옛 장기신용은행의 본점이 있던 자리다.
옛 국민은행 시절 44조3000억원이었던 자산이 합병을 거쳐 올해 6월 말 기준 271조원의 은행으로 성장하게 됐다.
◇ 신한은행 : 잔존법인은 조흥, 기념은 통합일로
신한은행은 1897년 한성은행으로 출발한 조흥은행과 1981년 설립된 신한은행이 합병한 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존속법인을 조흥은행으로 정해 법인의 설립년도는 1897년이다. 따라서 신한은행은 올해로 창립 114주년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현 신한은행의 존속법인인 조흥은행의 창립기념일은 2월19일, 그리고 옛 조흥은행을 인수했던 옛 신한은행의 창립기념일은 7월7일이다. 그러나 현 신한은행의 창립기념일은 2월도 7월도 아닌 4월1일이다. 바로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이 통합 출범한 날이다.
신한은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창립 몇주년'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통합 몇주년'이라고 표현한다. 올해도 4월1일 창립 114주년이 아닌 '통합 5주년'을 기념했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외에도 동화은행과 강원, 충북은행 등 지방은행을 인수 합병해 성장했다.
창립 연도와 얽힌 '애매한' 문제가 있었지만 신한은행은 통합 당시보다 크게 성장해 올해 6월 말 기준 226조원의 은행이 됐다.
◇ 우리은행 : 고이 간직하고 있는 천일은행
우리은행의 역사는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행명은 대한천일은행. 이후 조선상업은행, 한국상업은행으로 행명을 바꿨다.
우리은행은 전신은 한빛은행이다. 한빛은행은 1998년 12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해 만들어진 은행이다. 한빛은행은 다시 2001년 12월 평화은행을 인수한다. 지금의 우리은행으로 행명을 바꾼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옛 상업은행은 옛 조흥은행과 누가 가장 오래된 은행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논쟁이 필요없어 보인다. 우리은행은 행원들 명함에도 설립년도를 표시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장 오래된 은행인 현 신한은행은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한 거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실은행 간 합병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은행은 올해 6월 말 현재 총자산은 251조2000억원이다.
◇ 하나은행 : 인수는 인수일 뿐
하나은행은 다른 은행과는 조금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하나은행의 모태는 1971년 세워진 한국투자금융이다. 순수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비(非)은행금융기관인 한국투자금융은 72년 영업을 시작해 1991년 7월 은행업 인가를 받고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나은행은 1998년 6월 강제퇴출된 충청은행을 인수하고 1999년 1월1일 보람은행과 합병하여 새롭게 출발했다. 또 2002년 12월에는 서울은행과 합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은 하나, 서울, 보람, 충청은행의 머리글자를 따서 '한국의 HSBC'라고도 불린다.
하나은행의 실질 모태는 한국투자금융이지만, 존속법인은 서울은행이다. 서울은행은 1959년 창립돼 1962년 전국은행으로 발돋움했다. 1976년 한국신탁은행을 흡수합병하면서 서울신탁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95년에 다시 서울은행이란 상호를 사용하다 하나은행에 인수됐다.
하지만 하나은행의 홈페이지에는 존속법인인 서울은행의 역사는 없다. 한국투자금융이 설립된 1971년 6월25일이 하나은행 연역의 시작이다.
하나은행의 총자산은 6월 말 현재 150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