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수장들이 최근 모피아 출신들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금융투자협회장을 제외한 은행·보험·카드업계 민간금융협회 6개 대표 단체장들이 모피아 출신들로 채워졌다.
모피아란 옛 재정경제부를 영문으로 표기한 약어(MOF, Ministry of Finance)와 이탈리아 조직폭력단 '마피아'를 결합한 합성어로 재무부 출신 인사들이 정계와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고 거대한 세력을 구축한 것을 빗댄 용어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선후배들끼리 서로 밀고 당겨주면서 주요 요직들을 돌려막기 하듯 나눠 가지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이러한 오래된 문화(?)는 계속됐다. 오히려 연말을 맞아 모피아 출신 인사들의 '요직 나눠먹기' 잔치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모피아 낙하산 부대, 6개 금융권 협회 점령
대표적인 곳이 생명보험협회와 은행연합회다. 생명보험협회는 이우철(행시 18회) 회장이 물러나면서 새 회장으로 김규복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행시 15회)을 선임했다. 김 신임 회장은 재정부 기획관리실장과 신용보증기금을 거쳐 12월9일 생명보험협회장에 취임했다.
은행연합회도 지난 11월30일 신동규(행시 14회) 회장 후임으로 박병원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행시 17회)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박 신임 회장은 KT와 미래에셋 자산운용의 사회이사,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특히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직 시절 컨설팅 용역업체 부당 선정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 다른 금융권 협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행시 22회,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과 문재우 손해보험협회장(행시 19회), 주용식 저축은행중앙회장 등이 모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만약 내년 초 선출되는 금융투자협회마저 관료 출신 인사로 채워질 경우 6개 금융권 협회장들은 모두 모피아가 장악하게 되는 셈이다.
민간 금융협회는 아니지만 금융계 최대 재벌(?) 공기업인 이승우 예금보험공사 사장(행시 22회) 역시 전형적인 모피아 출신이다.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 국장을 역임한 그는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 금감위 부위원장 등을 거쳐 지금의 예보 사장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의 임기는 내년 초 끝난다. 새로운 수장이 온다 하더라도 모피아 출신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끈끈한 결속의 불편한 진실
모피아 출신 인사들은 끈끈한 결속과 추진력이 특징이다. 특히 추진력은 현 정부가 요구하는 성향과 비슷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성장률을 추구해 모피아 출신들을 중히 여기기도 했다. 또한 물가불안과 유럽발 재정위기, 북한 리스크 등 산적한 경제 현안의 위기관리 적임자로 모피아 출신이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반면 이들의 끈끈한 인맥과 결속력은 금융권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관료 출신들은 업계의 사정에 대한 이해가 얕은데다 기본적으로 관료주의에 익숙해 금융사들과 종종 '트러블'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임회피와 이너서클(소수의 핵심권력 집단)에 의해 최종 결정이 형성된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정책 실패가 드러나도 책임을 추궁당하는 일이 거의 없고 시간이 흐르면 정책라인에 기용되거나 주요기관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많다"면서 "정부의 보호 아래 외부 견제가 거의 없는 만큼 어떤 자리에 있든 추진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모피아 출신들의 또 다른 특징은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믿음을 주면 서로 끌어주고 이끌어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금융권 발전에 저하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 금융권 협회장을 모피아가 장악한 이유 역시 끈끈한 결속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금융권의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저하되면서 일부 인사들은 보수적인 협회를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다. 장기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기관으로는 협회가 가장 무난한 셈이다.
예컨대 일반 기업들은 매분기와 매년 실적과 경영지표 등에 따라 경영능력이 평가된다. 하지만 협회는 정부와 기업들간의 원활한 소통만 이뤄진다면 큰 논란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다.
금융권 한 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들의 경영환경이 많이 악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이미 여론이나 경영실패를 경험한 인사라면 당연히 금융권 협회를 원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요직 나눠먹기 여전…"내부 출신 단체장 필요"
이처럼 각 금융권 협회 수장자리를 당국 출신자들이 계속 차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금융회사들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당국 출신이 단체장으로 오면 제도개선이나 업계의 요구사항 등을 당국에 수월하게 요청할 수 있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는 것이다. 즉 당국의 자리 수요와 업계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금융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책임을 단체장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과 저축은행, 카드사 등 전 금융권이 적지 않은 위기에 봉착했다. 특히 부실 저축은행 사태는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비리 문제로 확산돼 금융권의 생명인 신뢰성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객들의 피해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올해는 특히 부실저축은행 사태로 소비자들의 피해만 늘어나고 있는데 낙하산 관행은 여전하다"면서 "결과적으로 금융권의 악순환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단체장들의 역할은 전문 지식과 업계를 잘 아는 내부 출신이 나와야 한다"면서 "각 금융권별 협회는 회원사인 기업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소비자들의 권익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역할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업계 회장과 회사 내 감사자리에 당국 출신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목적"이라며 "이는 책임 경영으로 회사를 키우기보다 로비와 협상으로 위기를 넘겨보겠다는 술수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