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인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여인시장’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조금만 가면 벼룩시장 거리와 기와 담벼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이 동묘다.
동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시는 묘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1604년에 중국인에 의해 동대문 밖에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동관왕묘이며 관왕묘, 관제묘라고도 한다. 공자를 모시는 게 문묘, 관우를 모시는 관왕묘는 무묘인 셈이다.
동묘는 규모가 작다. 한 눈에 다 보인다.
조선 세종대왕 때 무묘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장수 진인이 머물던 곳에 관왕묘를 만들면서 우리나라에 관왕묘가 처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처음 세워진 관왕묘는 남관왕묘였고 이후에 동관왕묘가 세워졌다. 이후 고종 때까지 북묘 서묘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동묘만 남아 있으며 보물 제142호로 지정됐다.
동묘는 규모가 작아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건물은 모두 보통 한옥건물과 다를 바 없는 데, 벽을 벽돌로 쌓은 것과 측면이 정면보다 길어 건물 안 공간이 깊게 만들어 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건물구조로 당시 중국 건축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동묘 담벼락 아래 벼룩시장
영도교 아래 청계천
동묘에서 나와 벼룩시장 거리로 나선다. 도로 한 쪽에 숭신초등학교가 보인다. 이곳이 조선시대에 여인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여인시장이 있던 곳이다.
여인시장은 채소를 주로 팔던 곳이었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가게 됐는데 당시 왕비였던 정순왕후 송씨는 궁에서 쫓겨나 동묘 부근 정업원(현재 청룡사)에서 살게 됐다.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정순왕후 송씨를 도와주던 사람들이 바로 이 여인시장 여자들이었다. 여인시장 사람들이 채소와 먹을 것들을 정순왕후 송씨에게 가져다줬다.
당시 여인시장이 있던 곳에서 청계천 쪽으로 가다보면 ‘영도교’가 나온다. 이 다리가 유배 가던 단종과 그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가 마지막 생이별을 했던 곳이다.
남편인 단종이 17살 나이에 영월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당시 정순왕후는 18살이었다)의 심정은 어땠을까? 긴 세월을 견디며 살던 정순왕후는 82세에 정업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도교를 건너면 더 이상 사랑하는 님을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 다리를 두고 ‘영원히 이별 하는 다리’라고 해서 ‘영이별교’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여인시장 채소전에서 잡동사니 천국 벼룩시장으로
영도교에서 다시 동묘 방향으로 발길을 놓는다. 세상 온갖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벼룩시장 거리를 걷고 있으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거리에서 털모자가 1000원에 팔린다. 기모바지 솜바지가 5000원이며 두툼한 겨울 옷 한 벌도 1만원 짜리가 있다.
이 겨울에도 활짝 피어 있는 조화 옆에 꽹과리가 놓여 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식판과 전기드릴과 프라이팬이 나란히 놓였다. 그 앞에 놓인 피아노에서 통통 거리며 건반을 연주하는 어느 집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빙빙 도는 레코드판에서 시작된 오래된 유행가 가락이 벼룩시장 거리에 흘러 다닌다. 그 옆에 낡은 풍구는 어느 집 아궁이에서 왕겨를 녹여 불을 피우고 구들장을 달구고 가마솥밥을 지었겠는가.
낡은 것들이 오히려 더 빛나는 그 곳은 마음을 주는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비한 동화 같은 세상이다.
겨울 길거리 한 복판은 콧물도 얼릴 기세다. 따듯한 국물 생각에 시장 골목을 기웃거리는 데 1500원 짜리 짜장면과 2000원 짜리 콩나물밥집이 눈에 들어온다. 짤랑거리는 동전 몇 닢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은 상식 밖의 세상이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큰 길을 건너 마을길로 들어선다. 동망봉으로 오르는 길은 이면도로에서 시작해 동네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동망봉에 세워진 ‘동망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골목길 전봇대에서 여행자를 반긴다.
청룡사
◆정순왕후 송씨의 발길을 따라가다
동망봉은 영월로 유배 간 남편 단종을 생각하며 정순왕후 송씨가 올랐다는 봉우리다. 그곳에 세운 정자가 동망정이다. 동망봉에 오른 정순왕후는 남편 단종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됐던 단종 또한 청령포 바위 절벽으로 올라가는 길에 망향탑을 쌓고 한양 쪽 하늘을 바라보며 온갖 역경을 혼자 견뎌야 하는 부인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동망정 앞 운동장을 지나면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면 체육시설이 있는 작은 운동장이 또 나온다. 이 운동장 한 쪽에 동망봉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보고 다시 나와서 좌회전,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 오른쪽으로 담벼락 넘어 시원하게 시야가 트인다. 그 길을 따라 가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길 오른쪽에 청룡사 현판이 보인다.
청룡사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살던 ‘정업원’이 있던 자리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게 되면서 그녀 또한 궁궐에서 쫓겨나 이곳에서 살게 됐던 것이다. 지금 그곳에 청룡사가 있다.
당시 궁에서 쫓겨나 먹고 살 길 막막했던 정순왕후를 도운 것은 마을 아낙네들이었다. 동묘 벼룩시장 숭신초등학교자리에 있었던 여인시장 사람들이 채소 등 먹을 것을 몰래 전해준 덕에 정순왕후 송씨는 목숨을 이을 수 있었으며 마을 아낙네들의 도움으로 바느질, 빨래, 옷감에 물들이는 일 등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청룡사에서 나와 왔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명신초등학교 담벼락을 지나면 전봇대에 ‘자주동샘’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 따라 내려가면 작은 초가가 먼저 눈에 띈다. 초가 뒤쪽에 ‘자주동샘’이 있는 데 바로 이곳이 정순왕후 송씨가 옷에 물을 들이던 곳이다.
자주동샘은 주변 아파트와 도로공사 등으로 인해 물길이 끊겼다고 전해진다. 샘이 있는 초가는 조선 중기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이 살던 집이다.
자주동샘에서 나와 왔던 길로 올라간다. 도로를 만나면 길을 건너 좌회전. 그 길로 올라가다보면 낙산공원 서울성곽과 삼선동 산비탈 마을이 어울린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풍경을 감상하며 도착한 낙산공원은 조선시대 한양을 방어하던 서울성곽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1396년(태조 5년)에 한양 둘레에 약 18km의 성곽을 완공한다. 이후 세종 때에는 흙으로 된 구간을 모두 돌로 바꾸어 쌓았고 영조 때에는 성곽 동쪽 부근에 방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치성을 쌓았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잇는 성곽과 성문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돼 일부만 남았다. 지금 이 성곽을 ‘서울성곽’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일부 구간은 성곽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했다.
낙산공원에서 낙산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낙산정에서 전망을 감상하고 동숭어린이집 앞을 지나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 길 가에 사람과 강아지가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조형물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중앙광장을 지나면 낡은 집 담벼락에 새겨진 낙타 한 마리가 보인다.
낙산으로 오르는 팍팍한 오르막길을 웃으며 걷는 낙타 표정이 2012년 한 해를 살아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다. 사막보다 황량한 세상 낙타 같은 발걸음으로 잘도 건너왔다고….
[여행정보]
<길안내>
지하철 6호선 동묘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조금만 가면 동묘와 동묘벼룩시장 거리가 나온다. 동묘벼룩시장에서 청계천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숭신초등학교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청계천 영도교가 나온다. 영도교가 출발지점이다. 영도교부터 동묘를 거처 동묘역 2번 출구까지 간다. 2번 출구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미술재료도매’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 골목으로 들어간다. 길터부동산 건물 보고 우회전. 30여 미터 앞에서 좌회전, 직진하다가 ‘신설호시’라는 간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그 다음 우회전 하면 전봇대에 ‘동망정’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계단옆 가운데 골목길로 간다. 골목길을 가다가 위를 잘 보면 정자가 보인다. 동망정까지 오른 뒤 운동장을 따라 직진하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체육시설이 있는 작은 운동장이 또 나온다. 거기에 ‘동망봉’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보고 다시 나와 좌회전해서 조금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재개발 공사로 인해 천막을 쳐 놓은 곳도 있다.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면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조금만 내려가면 청룡사가 나온다. 청룡사를 돌아보고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와 좌회전해서 낙산공원 쪽으로 간다. 명신초등학교를 지나면 ‘자주동샘’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서 내려가면 초가집 한 채가 보인다. 그 초가집이 ‘비우당’이고 초가 건물 뒤에 자주동샘이 있다. 자주동샘을 보고 다시 올라와 좌회전해서 낙산공원까지 간다(오른쪽 인도로 걷는다). 낙산공원 못미처 낙산공원 서울성곽과 삼선동 산비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게 된다. 낙산공원에서 낙산정으로 내려오면서 낙산정에서 전망을 즐기고 동숭어린이집을 지나 중앙광장으로 가다보면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과 강아지 조형물이 있고 그 다음에 중앙광장이 나온다. 중앙광장을 지나 대학로로 내려간다.
<음식>
동묘 벼룩시장 3번 출구에서 동대문 쪽으로 가다보면 콩나물밥집이 몇 집 있다. 2000원에 파는 집도 있고 2500원에 파는 집도 있다. 간단한 한 끼 식사로 먹기 좋다. 숭신초등학교 앞에서 청계천 쪽으로 가다가 영도교를 건너면 곱창거리가 있다.
<숙박>
대학로 및 종로 인근 숙박시설 이용.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