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계와 인쇄업계가 종이값 인상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인쇄소./사진=뉴스1


한솔제지·한국제지·무림페이퍼·무림에스피 등 제지업계와 인쇄업계가 종이값 인상을 놓고 다시 맞붙고 있다. 제지업체들은 원재료와 에너지 등 비용 부담을 고려하면 일부 지종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인쇄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 인쇄용지 공급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한 상생협약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제지업체들은 최근 인쇄업계의 종이값 인상 철회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 등 생산비 부담이 여전한 데다 지종별 수급 상황과 시장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격 조정에 나선 만큼 인쇄업계의 철회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지업계 한 관계자는 "중동 전쟁 등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제지업체들이 모든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최근 실적만을 근거로 가격 인상을 철회하라는 것은 제지산업이 처한 시장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말했다.

제지업계는 인쇄업체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상생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제지연합회 관계자는 "각사별로 영세 업체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중"이라며 "가격 조정과 별개로 수요업계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쇄업계는 제지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현실화하면 인쇄업체들의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인쇄용지는 인쇄업체의 주요 원재료인 만큼 종이값이 오르면 인쇄 단가를 함께 올려야 하지만 거래처와의 계약이나 시장 경쟁 등을 고려하면 비용 상승분을 즉시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인쇄업계가 가격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지난 5월 7일 제지업계와 인쇄업계가 체결한 상생협약도 있다. 인쇄업계는 협약의 취지가 원자재 가격과 공급망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쇄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었던 만큼, 제지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앞서 협약의 취지를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쇄업계는 제지업체들이 최근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까지 추진하는 것은 인쇄업계에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솔제지·한국제지·무림페이퍼·무림에스피 등 주요 4개사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약 85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9% 증가했다. 수출 증가와 백판지·골판지 등 포장재 수요 확대가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박장선 한국인쇄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종이값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이 중소 인쇄업체에 일방적으로 전가돼서는 안 된다"며 "인쇄업계의 경영 여건을 고려해 가격 인상에 앞서 업계 간 협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책의 특성상 종이 등 제작비용이 오르더라도 이를 판매가격에 바로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며 "제지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출판사와 인쇄사 모두 수익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업계 전반에서 비용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