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이모씨는 지난 4일 주문한 사과 한박스의 택배를 무려 10일이 지난 13일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나마 10일만에 도착한 사과상자를 열어보니 창고에 보관돼 있던 동안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사과에 서리가 잔뜩 끼어 있었다. 이씨의 사례는 그나마 약과다. 홈쇼핑은 물론 인터넷쇼핑 업체들마다 택배 배송과 관련한 민원 제기가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서점과 인터넷쇼핑몰 등에서도 더 이상 '당일배송' '익일배송' 시스템을 강점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사진_뉴스1 박세연 기자
이처럼 택배 배송 지연으로 소비자 불편이 가중된 데는 연말연시에 택배 물량은 늘어났지만 한파와 폭설로 운송에 어려움을 겪게 된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열악한 처우에 택배기사들의 상당수가 일을 포기하면서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택배 종사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니 인력 이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존에는 건당 4000~5000원 하던 택배 요금이 최근에는 2500원까지 50%가량 떨어졌다"고 현실을 전했다.
그렇다면 택배 운송단가가 이토록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된 건 왜일까. 홈쇼핑과 인터넷쇼핑업체 등 화주업체들이 택배업체들을 줄세워 가격 경쟁으로 최종 거래업체를 선정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몇년 새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택배 물동량 증가세가 둔화됐고, 그만큼 택배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 와중에 배송비를 한푼이라도 줄이려는 인터넷쇼핑몰과 홈쇼핑 등이 택배업체의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바람에 택배업체들로서는 '현실적으로 운영 불가능한' 정도까지 가격대가 떨어진 것이다.
택배업계는 이 같은 현실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 지난해 '화주기업·물류기업 공생발전협의체'를 구성하고 같은해 12월에는 실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선언적 의미에 그칠뿐 법적 강제력이 없어 택배기사들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는 효과가 미진했다.
문제는 택배업계의 실태 개선이 지지부진해진 사이 배송 지연에 따른 문제가 다른 산업군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계는 물론 산업 전반에 걸쳐 택배산업이 연계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며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분명히 수급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은 이용자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경고했다. 특히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과 맞물리면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 대형마트 등의 유통업계 피해가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국통합물류협회관계자는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협회차원은 물론 택배업계가 노력 중이지만 근본적인 문제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며 "무조건 택배단가를 낮춰야 이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화주업체들부터 가격 현실화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