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화합 경영, 축구계 혁신·갈등 치유에 적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축구대통령이 됐다. 정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축구협회 대의원 선거에서 15표를 획득해 경쟁자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을 6표 차로 따돌리고 52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는 허 회장이 앞섰다. 정 회장의 7표보다 한표를 더 획득했다. 그러나 결선투표에서 앞서 탈락한 두 후보의 표가 정 회장에게로 몰리면서 역전승을 거뒀다. 한편 허 회장은 1997년과 2009년 축구협회장 선거에 이어 세번째로 고배를 마시게 됐다.

허 회장은 GS그룹 창업주인 고 허만정 회장의 일곱째 아들이다. 현 GS그룹의 수장이자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회장이 허승표 회장의 조카다. 반면 정몽규 회장은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조카인 셈이다.

때문에 축구협회장 선거를 두고 재벌가 간 혈투로 묘사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해외교류가 활발한 축구협회장의 자리에 서게 되면 해당기업은 글로벌시장 공략이 수월해진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명예회장이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축구협회장에 재직하는 동안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계 갈등 봉합 기대감 '솔솔'

축구계의 '야당'으로 알려진 허 회장은 지난달 31일 신문로 축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동안 줄곧 축구협회의 반대편에 서 왔던 허 회장인 만큼 축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날 행사장에서 허 회장은 4년 전 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기자회견장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간 축구계에서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런 그가 기자회견장에 설 수 있었던 데는 정 회장의 배려가 컸다.

허 회장은 "4년 전에는 거절당했는데 이번에는 정 회장이 흔쾌히 수락하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 줬다"며 "이런 부분만 봐도 축구협회에 변화와 소통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축구계의 소통과 통합에 힘쓰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밝히면서 정 회장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깜짝 사건은 허 회장의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 벌어졌다. 정 회장이 회견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허 회장이 "회견을 열 수 있도록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정 회장은 "직접 와주셔서 감사하고 많은 조언 부탁드린다"고 화답했다. 축구협회장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 그림에 카메라 플래시가 숨가쁘게 번쩍였다.

앞서 정 회장은 축구계의 화합과 대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축구협회장 후보가 매번 내걸었던 공약과 큰 차이가 없다. 그동안 회장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축구계의 화합은 매번 공염불에 그치곤 했다. 세계 축구의 전문인력 양성과 축구계 야권과의 관계 개선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러나 취임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정 회장이 내건 공약에 기대감을 실리게 했다. 정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누구에게) 빚지거나 약속한 일이 없다"며 "축구 발전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주는 분들과 함께 하겠다"며 인사 기용에 편가르기를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회사는 벌써 '소통과 화합' 실천 중

현대산업개발 용산 신사옥에 들어서면 우선 탁 트인 개방감이 여느 회사와 다르다. 임원실은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모두 유리로 제작됐고, 인테리어 없는 강렬한 인상의 콘크리트 기둥에는 자연광이 조명을 대신한다. 9층 라운지는 자작나무판을 간격을 두고 배치함으로써 개방감을 준 것도 인상적이다.

용산 신사옥의 디자인 콘셉트는 진정성과 소통이다. 콘크리트, 철판, 자작나무 등을 그대로 노출해 소재의 숨김없는 본질을 통한 진정성을 전달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낮은 가림막과 통유리, 라운지 등이 소통을 표현한 공간이다. 이 같은 디자인 콘셉트는 정 회장의 주문에 따라 이뤄졌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원활한 소통이 혁신의 시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내부적으로도 '소통과 화합'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박창민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올해 시무식에서 강조한 내용 역시 '소통, 융합, 헌신'이었다. 실제로 현대산업개발에서는 소통과 화합을 위한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5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HDC 프라이드' 캠페인이다. 캠페인은 어떤 주제에 따른 임직원의 경험과 미담을 공유하고 가장 높은 호응을 얻은 글의 부서에 회식비를 지원하거나 상품을 증정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HDC는 현대산업개발의 영문명(Hyundai Development Company)으로 지난해 1월 용산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새로 도입한 그룹 BI다. 아울러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이념이기도 한 '원칙과 소신·인재중시'(Human & Honesty), '도전정신'(Dream & Development), '혁신적 사고'(Change & Creativity)의 확산과 소통 활성화의 영문 앞머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장배 풋살대회'도 임직원의 소통과 화합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1회 대회에는 본사뿐 아니라 현장 직원이 포함된 12개팀 140명이 참여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 회장 역시 직접 현장에 참여해 신바람 나는 직장 분위기 형성에 한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 이어 정 회장에게는 축구계의 소통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정 회장은 앞으로 4년간 축구협회와 회사를 오고가는 셔틀경영을 펼쳐야 한다. 정 회장의 진정성이 반목과 시기·갈등을 겪은 축구계에 어떻게 전달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 프로필
1980 용산고 졸업
1985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88 영국 옥스퍼드대학 정치, 철학, 경제학(PPE) 석사
1994~1996 울산현대호랑이 프로축구단 구단주
1996~1998 현대자동차회장
1997~1999.03 전북현대 다이노스 프로축구단 구단주
1999~ 현대산업개발 회장
2000~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 구단주
2011 제9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2013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