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 왕의 묘는 장릉이다. 13살에 왕이 되어 청령포에 유배됐다가 17살에 삼촌에게 죽임을 당하고 동강에 버려졌던 왕. 단종은 고향인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강원도 영월에서 영면했다.
◆목숨을 건 충신의 발자취
헉, 헉, 헉…. 오를수록 숨이 가쁘다. 다른 능에 비해 봉분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만 왕릉 오르는 길이 어찌 이리 험한가. 발끝을 보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엄홍도의 발자국이 오버랩 된다. 그는 동강에 버려진 옥체를 수습해 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왕이 살해돼 강에 버려진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그 시신을 거두는 충심까지도 반역이 되는 상황에서 머릿속이 어땠을까. 늘어진 청년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고, 한겨울 눈길을 헤치는 산 자의 등줄기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내, 자식, 친가, 외가…. 충절로 시작한 일이지만 발각되면 삼족이 멸하게 될 일이다. 푸드득! 여기서 최악은 사람을 만나는 것. 다행히 놀라 뛰쳐나간 것은 노루다. ‘휴우…!’ 그는 노루가 떠난 자리에 지게를 놓았고, 더 이상 지게가 움직이지 않자 이곳에 그분을 장사 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엄홍도 입장에서는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을 담보로 한 처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덤은 버려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역사가 돌고 돌아 소년 왕은 ‘단종’이라는, 그의 자리는 ‘장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장릉은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무덤에는 보통의 능에 있는 무인석이 없는데, 이것은 단종이 무인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봉분 쪽에서 내려다 보면 가파른 언덕 아래 정자각과 비각, 수복방이 보인다. 다른 왕릉과 달리 신주를 모신 정자각과 무덤이 일직선으로 놓이지 못하고 ‘기역(ㄱ)’자로 비틀어져 있다.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되지 못하고, 후에 지형을 살려 모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가 야사인지 전설인지 모를 이야기에 믿음을 더한다.
입구 쪽에는 홍살문을 지나 신도, 그 끝에 신성한 샘이 있다. 물은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하는데 이곳에만 있는 신령한 물이 안타까운 소년 왕의 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이 있다는 점이다. 단종 복위운동을 하거나 관계된 사람들이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장릉에서는 매년 단종과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에게 제를 올린다.
◆소나무 대신의 섬, 청령포
노산군으로 폐위된 단종은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리 깊지 않은 강물이 부드럽게 땅을 가르고 있는 평화로운 소나무 섬이다. 그렇지만 소년 왕에겐 이곳이 생사를 가르는 저주의 섬이었을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똑바로 자란 것이 없다. 이들은 단종의 유배처인 ‘단종어소’를 향해 머리를 기울이고 있는데 마치 대신들이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처럼 보인다.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당시 모습을 복원한 ‘노산군의 집’은 왕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관노들이 머물던 행랑채가 있다. 여행자들이야 하루 왔다 가는 곳이니 ‘고즈넉하고 좋다’ 하겠지만, 혈기 왕성했던 청소년 왕이 가족과 떨어져 친구 하나 없이 죽음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집’이 아니라 ‘감옥’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왕의 친구, 그의 대신이었을 것이다. 밤 깊은 시간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와 바람 소리는 고독의 깊이를 더했을 것이고, 가끔 나무 위에 올라 에너지를 발산하고 기대어 애통하며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특별히 왕이 사랑했다는 ‘관음송’은 600년 시간만큼의 위엄이 있다. 30m 높이로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가 아직도 건재한데, 이 나무는 그때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겠지….
청령포 뒷산 노산대로 오르는 길에는 비인 정순왕후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다. 소박하고 나지막한 돌무더기로 보이는데 여행자들이 올린 조약돌이 보태져 큰 볼거리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친구 같은, 연인 같은, 오누이 같은 비와도 생이별을 했으니 돌탑 아니라 성을 쌓았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청령포는 마음으로 둘러보는, 우리가 가볼 수 있는 물돌이동 중 가장 애절한 곳이 아닐까.
◆관풍헌에서 일상으로
단종이 마지막에 머문 곳은 관풍헌이다.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영월의 객사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왕방연이 가져온 사약을 받았는지, 올가미로 목이 졸렸는지, 자결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무엇이 됐든 어느 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객사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진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곳에 얽힌 또 다른 인물을 떠올려 본다. 조선 말 방랑시인 김삿갓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지만 자신이 지탄한 대상이 조부임을 알고 삿갓을 쓰고 방랑했다고 한다. 해학이 가득한 이야기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곳과 관계된 이야기는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이 또한 애사(哀史)….
다시 한번 분위기를 바꿔본다. 관풍헌 앞에는 청록다방이 있다. 이곳은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시골 읍내 분위기가 물씬 나는 다방에 들어서면 영화의 주인공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배우들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이제야 비로소 슬픈 역사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등받이가 갈라지기 시작한 인조가죽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 진하게 타 먹는 다방커피 한잔을 주문해 본다. 단종의 발자취를 따르며 울적해진 마음을 달달한 커피로 삼키고, 소설 같은 역사이야기에서 빠져 나온다.
돌아갈 시간. 뼛속까지 고독했던 소년 왕의 공포와 극단의 위험을 무릎 쓴 충신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네 평범한 일상은 축복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도 고맙고 감사한 여정이었다.
[여행 정보]
● 장릉 가는 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 - 북부로 - 신당삼거리에서 ‘의림지·경찰서’ 방면 - 용두대로 - 용두교사거리에서 ‘시외·고속터미널, 의림지’ 방면으로 우회전 - 청전대로 - 장락삼거리에서 ‘영월·주천’ 방면 - 내토로 - 느릅재터널·각한터널·방절터널 - ‘영월·청령포’ 방면으로 우측 - 영월동로 - 청령포교차로에서 ‘영월·청령포’ 방면 - 청령포로 - 영월로 - 장릉삼거리에서 ‘군청’ 방면 - 단종로
[버스]
센트럴시티터미널 - 영월시외버스터미널 - 조전리 농어촌 버스 - 장릉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장릉 : 검색어 ‘장릉’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 133-1
청령포 : 검색어 ‘청령포’ /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관풍헌 : 검색어 ‘관풍헌’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84-3
< 여행지 주요정보 >
영월 여행정보 http://www.ywtour.com
장릉
033-370-2619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요금 : 성인 1400원 / 어린이·청소년 1200원
청령포
1577-0545
관람시간 :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시간 오후 5시까지)
관람요금(도선비 포함) : 성인 2000원 / 어린이·청소년·군인 1200원
< 음식 >
청록다방 :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지로 커피와 다양한 차를 마시며 시골 다방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커피 2000원 / 각종 차와 주스 3000~5000원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40-21 / 033-373-2126
청산회관 : 강원도 대표음식인 곤드레밥을 두부구이 등 밑반찬과 함께 맛볼 수 있다.
곤드레밥 9000원 / 버섯전골 9000원 / 불고기백반 1만5000원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45-10 / 033-374-2141
< 기타 여행지 및 축제 >
별마로 천문대 : 봉래산 800m 정상에 위치한 전통의 천문대로 천문 관측 뿐 아니라 산 위에서 보는 영월 시내 전경이 아름답고 일출이 장관이다. 천체관측은 월별 대상이 다르고 내용에 따라 운영시간이 다르니 홈페이지 ‘관람시간표’ 참조
http://www.yao.or.kr
관람시간 : 하절기(4~9월) 오후 3시~오후 11시 /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 성인 5,000원 / 6세이상 초·중·고생 4000원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천문대길 397 / 033-374-7460
동강축제 : 8월2일부터 6일까지 동강 유역 일원에서 축제가 열린다. 맨손 숭어잡기, 래프팅 등 체험 프로그램과 라디오스타 페스티벌 등 축하공연이 열린다.
영월홀릭 사이트 참조 http://www.ywholic.co.kr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