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살리기'는 허울만 좋은 구호였던가. 영업정지 철퇴를 맞은 와중에도 이동통신사들의 이전투구가 여전하다. 특히 팬택과 LG유플러스 간 출고가 할인 협상이 지난 4월23일 결렬되면서 그 배경과 향후 단말기 유통 조건을 두고 볼썽사나운 입씨름마저 벌어져 시장이 혼란스럽다.


협상 결렬을 둘러싼 양사의 '음모론'과 '반론'이 맞부딪히면서 '팬택 살리기'의 실체까지 모호해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팬택 살리기를 선언한' 이통사들의 본심을 의심하는 시각도 나온다.

오히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차일피일 미뤄진 단말기통신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에 대한 시장의 요구만 더욱 부각됐다. 


◆팬택 "선구매부터" vs LGU+ "해준다는데도"

팬택과 LG유플러스는 '선구매'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 협상 테이블에서 등을 돌렸다. 팬택의 요구는 현재 재고 상황에 따른 최대한의 선구매였다.

팬택은 지난 4월18일 이후 협상에서 인하 가격, 이미 나간 재고에 대한 기존 출고가와의 갭(재고보상금)을 분할 상환하는 기간, 다른 단말기 신규구매(선구매) 규모, SK텔레콤·KT 등과의 공동 보조 등을 요구했으나, LG유플러스는 분할상환 기간 이외의 다른 요구사항은 거부했다.


결국 4월23일 팬택은 ‘베가시크릿업’의 출고가 인하에 대한 계약을 최종 포기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LG유플러스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팬택 측에 우리가 구매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고 전했다"며 "하지만 팬택 측이 ‘다른 통신사에서 우리한테 요청한 만큼 전량 구매해주기로 했다'며 우리 쪽하고는 전혀 협상할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팬택 측에 타 경쟁사만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구매해주겠다고 제의했다”며 “가격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판매 중단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LG유플러스 측이 협상 결렬 배경에 경쟁사의 '음모론'을 들고 나섰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우리만 영업재개된 상황에서 베가시크릿업의 가격을 낮춰 판매하면 누가 배 아파할까. 경쟁사들 아니겠냐"며 "우리는 해당 단말기 재고를 소진할 수 있지만, 영업정지 상태인 타사는 가격을 낮춰도 제품을 팔 수가 없는 현 상황이 이번 (결렬) 건의 배경"이라고 확언했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앞서 KT가 지난 4월18일 LG유플러스의 베가시크릿업 가격 할인 판매 결정 발표가 나온 후 곧바로 자사의 동일단말기 가격을 인하한 터라, LG유플러스 측이 가리키는 '경쟁사'는 SKT인 것으로 판단된다.
SKT는 펄쩍 뛴다. SKT 관계자는 “우리가 '선구매 물량을 다 사주겠다'며 팬택을 뒤에서 조종했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미래부에서 시장안정화를 위한 자정노력 공동선언을 했을 때 팬택 등 경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제조사에 대한 추가구매물량에 대해 약속을 했었고 이후 팬택 물량을 1차로 추가 구매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1사 영업재개, 2사 영업정지'라는 현 통신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치싸움에 '팬택 살리기'의 애초 취지와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팬택 살리기'의 시발점이 된 것은 지난 3월 미래부와 이통3사 CEO 간 만남이었다.
당시 미래부는 이통3사에 중소 단말기 제조사의 제품 선구매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통3사는 이를 바탕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제조사에 대한 추가구매 등이 담겨있는 '이동통신시장 안정화를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 다시 불붙은 보조금 논란

이번 팬택과의 할인 협상 결렬로 LG유플러스는 불법 보조금 지급 논란에 또한번 휘말리게 됐다.

앞서 LG유플러스는 지난 4월18일 'LG유플러스, 팬택 살리기 나섰다' 제하의 자료를 내고 당일(18일)부터 팬택의 주력 LTE 스마트폰 베가시크릿업의 출고가를 기존의 95만4800원에서 37% 인하한 59만9500원에 단독 판매키로 결정했다고 공지한 바 있다.

문제는 제조사와 협의·약정이 안 된 상황에서 적용한 할인가 35만5300원은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잡힐 수 있다는 점. 이는 방통위 보조금가이드라인(27만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베가시크릿업을 하루 300대 정도 판매해 온 LG유플러스는 단말기 가격을 낮추면서 해당 폰을 하루 2500대나 판매할 수 있었다. 출고가를 인하한 4월19일부터 판매를 중지한 4월24일까지 1만5000대가 팔린 셈. 그만큼 신규·기기변경 가입자를 확보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LG유플러스 측은 이번 건은 불법 보조금과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보조금 이슈는 구두합의된 상황으로 문제가 없다”는 설명.

이와 관련해 방통위는 불법 보조금 논란에 당국이 칼을 빼들긴 이르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협상이 진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정부가 나서서 이건 불법이다, 다시 (출고가를) 올려라 할 순 없다”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규제기관이 칼을 들이댈 순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LG유플러스 측이 재협상 테이블에서 팬택에 적절한 혜택을 제시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더 절실해진 '단통법' 통과
현재 베가시크릿업 판매를 정지했으나 추가협상의 문은 열어놨다는 LG유플러스와 달리 팬택은 이미 타 이통사로 눈을 돌렸다.

팬택 관계자는 “LG유플러스 측이 추가협상을 하겠다고 얘기 하지만 우리로선 협상을 포기한 상황”이라며 “ SKT·KT와의 (선구매 관련) 협상에 집중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현재 SKT는 팬택 측이 출고가 인하에 대한 협상을 요청하면 그에 따른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KT는 지난 4월25일 '팬택 측 요청'이라며 인하했던 단말기 출고가를 다시 인상 시켰다. 팬택과의 선구매 협의는 진행 중이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단말기 유통구조가 이통사들의 이전투구, 그리고 최근 벌어진 팬택 협상 결렬 건 등을 야기했다며 현재 논의 중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만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단통법이란 음성적인 보조금 지급을 막아 휴대폰 출고가를 낮추고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는 법안으로, 국회 통과 시 대리점과 판매점은 이통사가 공시한 기준과 다르게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정치권에선 여야 대표가 한뜻으로 단통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는 있으나 여야 이견이 뚜렷한 방송법이 단통법과 묶여 있어 법안 처리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