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 리딩뱅크의 수난시대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금리나 신상품 등에서 시중은행을 선도했는데 이제는 '추풍낙엽'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의 이야기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임 회장이 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을 주도하자 이 행장이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건호 행장 편에 선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 감사가 전산시스템 교체과정에서 이권 개입이 있었다며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면서 '막장 드라마'로 치달았다.


KB금융과 계열사 내부의 말을 들어보면 이번 사태는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터진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CEO로 선임된 이래 이미 수차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왔다. 문제는 둘 사이의 기 싸움이 선의의 경쟁보다는 알력다툼이라는 데 있다. 은행의 신뢰성 회복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은행의 치부를 외부에 공개한 셈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한두가지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2008년 KB금융이 설립된 이래 경영진이 바뀌면서 끊임없는 내부갈등이 일어났다. 또 금융당국이 CEO를 좌지우지하는 관치금융 논란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는 그만큼 KB금융의 신뢰회복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개인의 사리사욕보다 은행과 금융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십 있는 '내부 출신' CEO의 중요성이다. 임영록 회장은 관료출신, 이건호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둘 다 외부출신이다. 이번 KB금융 사태가 국내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낙하산 인사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 다른 금융지주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과거 국민은행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고 주택은행을 인수하면서 서민을 따뜻이 보듬어주는 신뢰받는 은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신뢰는 바닥을 치고 은행권을 선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건호 행장이 지난해 말 국민은행의 비리·부실의혹이 잇따라 불거지자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밝힌 말이다. 하지만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은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은행보다 자신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한 KB는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