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55). 한때 신세계그룹 실세로 통했던 그가 제과업체인 오리온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1월 이마트 사장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만이다. 허 전 사장은 지난 14일부터 오리온 본사로 출근해 담철곤 회장의 부인인 이화경씨와 공동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대표급 인사가 1년도 안돼 회사를 옮긴 것은 흔치 않은 일. 재계에서는 이례적이란 반응을 내놓고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초코파이로 대변되는 오리온그룹으로 넘어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허 부회장을 노린 곳은 비단 오리온뿐만이 아니었다. A사를 포함한 다수의 식품업체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인데다 재무통인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서다.
 
A사 관계자는 “(허 부회장이) 이마트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부터 우리 회사로의 영입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룹에서 재무쪽을 담당하는 것으로 얘기가 오갔지만 영입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가 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허 부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오리온그룹이 오너체제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적잖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오리온에서 이화경 부회장과 같은 직급을 맡은 뒤,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오너 일가의 빈자리 메우기를 총괄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오리온은 담 회장이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그룹경영을 총괄하고 있지만 그룹 내에 오너 일가를 대표해 인재 및 실적관리 등을 아우르는 사람이 절실하다. 그만큼 허 부회장의 입김도 세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리온에 산적한 문제 역시 기회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실적 악화 문제가 허 부회장의 능력을 보여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제과업계 '빅3' 가운데 유일하게 매출이 감소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기록해 주요 임원들을 교체하는 등 변화를 주고 있다.


재계에서는 허 부회장의 영입이 정체기를 맞은 오리온에 플러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에서 굵직굵직한 고비를 넘겨온 그가 조직 재정비와 함께 재무 실력을 발휘한다면 오리온의 실적 만회는 시간문제라는 해석이다.

허 부회장 입장에서는 조금만 실적을 향상시켜도 큰 효과를 낸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몸값을 또 한번 높이는 발판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허 부회장의 오리온행을,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의 서먹해진 관계와 연관시키는 시선도 존재한다. 


신세계그룹 총수인 이명희 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그룹을 좌지우지하던 허 부회장이, 정용진 부회장의 역할이 커지면서 외곽으로 밀려난 모양새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 
그 무렵 허 부회장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나 노조분쇄 전략, 국감 태도 논란 등을 통해 정 부회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공교롭게도 소문이 떠돈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말, 이마트 대표체제가 2인으로 바뀌면서 허 부회장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고 그는 결국 올초 신세계에 사표를 던졌다.

물론 그를 신세계그룹의 ‘제왕적 지배구조의’ 희생양으로 보는 측면도 있다. 오늘날 신세계 성장을 주도한 인물로 회자되던 그였지만 오너와의 갈등설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구구한 억측만 쏟아낸 허 부회장의 그간 행보. 어찌됐건 그는 퇴사 6개월 만에 오리온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재계에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통상 사장을 하다 물러나면 해당기업에선 2~3년간 상근 고문에 임명해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계속 관리하는 것이 재계의 보이지 않는 관례였다.

한때 신세계그룹에서 유능한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던 허 부회장. 그가 오리온에서 전문경영인의 한계를 뛰어넘을 경영수완을 발휘할지, 그의 향후 행보를 재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 프로필
1986년 1월 삼성그룹 입사 / 1992년 3월 삼성물산 관리본부 경리과장 / 1997년 1월 ㈜신세계 프라이스클럽 총무팀장 / 1999년 3월 ㈜신세계 경영지원실 경리팀장 / 2002년 12월 ㈜신세계 경영지원실 재경담당 상무 / 2005년 12월 ㈜신세계 경영지원실 관리담당 상무 / 2006년 12월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 / 2011년 5월 ㈜신세계 기업분할 [백화점부문→㈜신세계, 이마트부문→㈜이마트] / 2011년 5월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부사장 / 2011년 12월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사장 / 2012년 12월 ㈜이마트 대표 사장 / 2014년 7월 오리온그룹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