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저자 주영하 교수

음식만큼 인간의 욕망이 정직하게 투영된 대상은 없다. 음식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제대로만 정리한다면 음식의 역사는 다른 어떤 사료보다 더 명료하게 인간이 살아온 자취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음식에 관한 역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우리 음식 문화사 연구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나마 그의 연구 성과가 없었더라면 우리 음식 문화사는 황량할 뻔했다. 
▲ 주영하 교수 (제공=월간 외식경영)

우리 음식에 관한 글 한 줄이라도 썼던 사람이라면 그의 저서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명주실을 한없이 토해내는 누에처럼 주영하 교수의 연구 성과와 저서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그는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을 펴냈다.
◇ ‘영조시대의 조선’ 시리즈물 가운데 한 권으로 발간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은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주영하 교수가 적을 두고 강의와 연구, 집필을 하는 국립 학술기관이다. 

연구원에서는 ‘영조시대의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영조 치세의 특징과 업적을 19가지 주제로 정리하는 기획을 진행했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군주, 영조시대를 입체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 시도였다. 연구원의 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각각 영조시대를 정리해 책으로 묶어냈다. 주 교수의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은 영조시대의 조선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이 긴 것은 무조건 축복일까? 분명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질문은 어쩌면 인문학의 가장 중심에 둘 화두이자 가장 큰 물음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 유지되고 못하고 무의미한 시간으로 채워진 장수라면 결코 축복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100세에 행복한(?) 단식으로 생을 마감한 스콧 니어링의 사례는 부럽기도하고 숭고해 보인다. 영조는 어떠했는가?


영조는 누구나 잘 알듯 조선의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장수를 누렸다. 83세까지 살면서 무려 52년간 제위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왕이었지만 위생이나 의료 수준이 지금보다 매우 열악했던 시대에 모든 조선시대 임금 평균 수명의 두 배를 살아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이다.

◇ 정력적으로 국정 돌본 영조, 수많은 글 남겨
이런 유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료의 결핍을 호소한다. 좋은 글, 완성도 높은 책을 쓰려면 풍부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얼마나 자료를 찾느라 힘들었느냐’고. 

그런데 주영하 교수의 답변은 의외였다. 자료가 풍부해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럴 때 인터뷰어는 난감해진다. 어쨌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은 공식적인 기록이므로 음식에 관한 기록은 드물다. 

정치, 경제, 법률, 군사, 외교 등 국정의 중심이 되는 사건 위주로 기록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는 비교적 왕의 사적인 행적이나 언행의 기록이 실록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 ‘승정원일기’와 함께 자료의 보고가 된 것이 어제윤음(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이었다고 한다. 조선 왕립도서관이었던 장서 각藏書閣이 창경궁에서 연구원으로 이관한 바 있는데, 바로 이 장서각에 영조가 직접 쓴 윤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려 5400여건이 넘는 영조의 글이 소장되었다니 놀랍다. 이처럼 영조가 윤음을 많이 남겼다는 것은 그만큼 부지런히 국정을 돌봤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했음을 반증한다. 그럼 영조는 어떤 식생활과 섭생을 했기에 그렇게 건강할 수 있었을까? 책으로 들어가 보자.

◇ 영조의 건강 식생활, 아기자기하게 4부로 재구성
참으로 예쁜 책이다. 우선 판본이 손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고 귀엽다. 182쪽으로 분량도 적어 예전 문고판 느낌도 난다. 누가 봐도 탐나고 갖고 싶은 책이다. 표지도 한지에 파란 물감을 들인 듯한 질감이 시원하고 인상적이다. 

영조에게 수라를 바치는 그림을 간단한 수묵 약화로 그렸다. 본문 지질도 광택지를 사용해 고급스런 느낌이 든다. 영조의 어진, 십장생도, 동궐도를 비롯해 각종 그림과 서적, 문서의 원본을 풍부하게 사진으로 제시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이 사진들 자체가 책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면서 여백을 이룬다.


논문 형식의 책이지만 이런 여러 장치들이 이 책을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게 해준다. 책 뒤에 꼼꼼하게 달아놓은 주석과 다양하고 풍부한 참고문헌은 이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가진 독자들에게는 아주 요긴하고 유용한 선물이다. 매끈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영조시대의 연표는 덤이다.

책은 4부로 꾸며졌다. 1부 ‘영조, 83년의 성수를 누리다’에서는 조선 시대 왕의 수명과 조선 왕실의 음식과 의료 시스템을 살폈다. 2부 ‘영조가 즐겨 먹었던 음식’에서는 영조의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과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한다. 

3부 ‘영조에게 제공된 보약’에서는 음식이 아닌, 인삼과 같은 영조가 즐겨 먹었던 약제와 탕제를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 4부 ‘영조의 건강 비결과 식생활 태도’에서는 영조 스스로 어떻게 건강을 관리했는지 그 노하우를 살폈다.

주영하 교수가 이 책에서 21세기의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영조의 식생활과 생활 태도를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 몇 가지다. 이는 곧 영조의 장수 비결이기도 했고 현대인의 올바른 건강 지침이기도 하다.

영조는 늘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했다. 더욱이 아버지인 숙종과 형인 경종을 간호하는 과정에서 얻은 의학적 지식이 한몫 했다.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음식과 약제를 정확하게 집어냈다. 영조의 가장 큰 건강 유지 비법은 생활 태도였다. 

일반인들의 편견과 달리 영조는 매우 약골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술을 거의 먹지 않고 밥을 제때 챙겨 먹고 소식하면서 절제하는 식생활을 이어나갔다.

저자는 말미에 이렇게 썼다. ‘영조는 각종 약제와 음식을 정할 때 반드시 자신의 체질과 식치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스스로 판단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식전방장의 형국에 빠진 현대인들이 영조로부터 배워야 하는 건강 비결이면서 동시에 식생활 태도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