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성문화가 서구화되고 개방화되는 추세지만 공개적으로 피임이나 성생활을 얘기하는 것은 아직도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케이블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에서 시작된 거침 없는 성에 관한 담론 프로그램이 히트를 치면서 이제는 공중파에서도 심심찮게 '19금'에 근접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방송과 여성잡지를 통해 성이나 연애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풀어놓는 곽정은 칼럼니스트를 메인 모델로 내세운 피임약 CF도 서슴지 않고 TV에 등장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 피임약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대부분 텔레비전, 비행기, 이동통신, 우주선 등 기계와 관련된 제품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유수 석학들과 포춘(Fortune)지, AFP통신 등이 꼽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1위는 피임약이다.

피임약 개발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미국의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는 '성생활과 산아제한의 자유를 이끄는 피임이야말로 여성해방과 인류발전에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콜린 블랙모어 옥스포드대 교수는 피임약을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적극 추천하면서 "피임약이 전통적인 가족구조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성의 지위를 높여 인류 역사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피임을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4000년부터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이집트인들은 석류 씨의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이용해 피임약으로 사용했다. 호르몬을 이용해 배란을 억제하는 현대 피임약의 시초다. 물론 이렇게 호르몬을 통한 방법 외에도 정자를 죽이는 피임약이나 여성의 생식기 내부에 순면 등을 삽입하는 물리적인 피임법 등도 사용됐다.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피임법들이 개발됐다. 고무산업의 발전 이후 1844년 라텍스로 된 최초의 콘돔이 등장했다. 1956년에는 드디어 인류 최초의 피임약이 개발됐다. 1960년 가장 먼저 상업적인 경구피임약 판매에 나섰던 미국의 제약회사 '시얼'(Searle)의 기록에 따르면 피임약의 보급 속도는 놀랄 정도로 빨랐다. 최초의 피임약 '에노비드'(Enovid)는 출시 2년 만에 120만명의 여성이 복용했고 출시 5년 후 500만명, 14년 후 약 1000만명의 여성이 복용했다.

물론 피임약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여성의 순결을 위협한다며 기혼여성에게만 판매가 허용돼 미혼여성들은 편법을 써서 구해야만 했다. 경제대국 일본도 경구피임약을 30년이나 금지한 끝에 1999년이 돼서야 허용했다. 여성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지만 남성위주의 성윤리가 더 근본적인 배경이란 지적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보급된 경구피임약은 특히 여성의 지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임신과 출산에 이어 집안일과 노동까지 무거운 짐을 졌던 여성들에게는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사회참여가 제한됐던 여성들이 본인의 의지로 가족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고 사회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거쳐 여러 피임방법이 사회에 정착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피임수준은 여전히 낮다. 국내에 경구피임약이 도입된 것은 피임약이 판매되기 시작한 1960년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 피임약 복용은 약 2.5%로 피임 실천이 높은 서구의 20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한해 35만건), 콘돔 사용률 최하위 국가로 낙인 찍혔다.

 

낙태율 높은 중국, 최근 피임 수요 급증

피임과 관련된 문제는 우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완화되고 있지만 이제까지 '한 자녀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던 중국의 경우 피임이 국가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 급속한 개방화와 과거의 관습이 공존하며 여성들의 원치 않는 임신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임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전근대적이다. 그 결과는 낙태로 나타났다.

중국정부는 지난 1971년부터 1가구 1자녀라는 강력한 가족계획정책을 시행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자녀가 있는 여성이라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 미혼여성은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결혼해서 법적 자녀로 등재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들의 선택은 낙태였다.

깜짝 놀랄만한 통계를 하나 소개한다. 중국 당국의 공식 통계임을 미리 밝힌다. 1971∼2012년 사이 중국에서 낙태를 선택한 사람은 무려 3억5000만명에 달한다. 매년 1300만명, 시간당 1500명이다. 관련 통계자료에서 중국정부는 이 수치도 정상적으로 의료시설에서 낙태한 숫자만 집계된 것이라고 밝혔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낙태한 사람까지 합하면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인들은 산아제한정책으로 각 집에 자녀가 한명으로 제한되자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이 떠받들며 황제처럼 키운다. 이렇게 자라난 중국의 신세대 청년층을 '소공자·소공녀'로 부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2014년 중국의 소비를 선도하면서 전세계 명품이나 스마트폰 등의 부문에서 중국을 소비 1위 국가로 만들었다. 이렇듯 소공자·소공녀들은 소비패턴부터가 그 전 세대와 전혀 다를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접근방식과 행동도 기존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 하나의 예가 중국의 콘돔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07~2013년 사이 중국의 콘돔 수입은 거의 3배(340만톤)나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경구피임약이나 콘돔 사용률은 각각 1,7%, 4.3%로 서구는 물론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최근 중국정부의 가족계획과 관련된 정책은 소위 투트랙이다. 한편으로는 1가구 1자녀 원칙을 대폭 완화하면서 노령화시대의 진입을 억제하고, 또 한편으로는 피임교육과 정책을 강화해 낙태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에서는 콘돔이나 피임약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피임을 비롯한 성문화에 대한 의식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피임관련 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부 통계기준 1990년대 초반 한자리 수에 불과했던 콘돔 사용률이 2009년에는 25%로 높아졌다. 피임에 대한 수요는 미혼남녀에게서 더 높아졌다.

중국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 전체 낙태시술의 62%가 20∼29세의 미혼여성이었다. 피임약이나 콘돔을 무상으로 제공해온 중국정부도 이들 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독자라면 중국의 피임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없는 평범한 독자라면? 선거철 때마다 보육지원정책이 나오고 그때마다 꿈틀거리는 테마성 주식을 눈여겨 보자. 이들 중 중국의 신생아 확대와 관련된 기업을 찾아보거나 피임약이나 콘돔의 수요확대, 혹은 신생아용 의약품에 전문성이 있는 제약회사를 점검해보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추석합본호(제347·34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