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학벌이 중학교 때부터 형성됐다. 사회의 고위직급과 전문직에 K중학교, K고등학교 출신이 많았다. 중학교 입시를 위한 초등학생의 사교육이 요즘 대학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보다 열기가 더 뜨거웠고 '과외망국'이라며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국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입시문제를 쉽게 출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K중학교의 경우 전과목에서 만점을 받거나 오직 한 문제만 틀려야 합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단 두개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 입시 폐지 가져온 '창칼파동'
그러다 중학교 입시에서 이른바 '창칼파동'이 일어났다. 지난 1967년 12월1일 치러진 시험 중 '미술 13번' 문제는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었다. 원래 정답의 그림은 오른손잡이가 창칼을 사용하는 모습인데, 왼손잡이가 사용하는 방법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K중학교에 낙방한 학생의 부모들은 복수 정답을 주장하면서 시위를 벌였고 교장과 교감을 연금하는 사태로 번졌다.
서울과 경기도의 중학교 낙방생 학부모 549명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해 결국 이들은 불합격 처리됐다. 창칼파동으로 K중학교 교장은 물러났다.
창칼파동이 일어나기 이전인 1964년 12월 서울 전기중학교 입시에서는 '무즙파동'이 있었다.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엿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놓고 세번째 순서인 '③ 이밥에 물 3ℓ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보기 중 1번 '디아스타아제'가 정답으로 발표됐는데 2번 '무즙'을 선택한 학생들이 무즙도 답이라고 주장했다. 디아스타아제는 침과 무즙에 들어 있는 것으로 교과서에 나와 있다고 학부모들이 반발했으며 실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와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은 무즙은 오답이라고 결론 내렸고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는 무즙도 정답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무즙을 선택해 낙방한 학생 39명이 뒤늦게 전학 형식으로 원하는 학교로 옮기게 됐다.
거센 입시 열풍 속에서 이런 사태가 잇따라 벌어지자 당국은 창칼파동 직후 중학교 입시제도를 전격 폐지했다. 입시문제의 오류가 중학교를 평준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초등학생들은 입시 열풍과 사교육 지옥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고교 입시가 존재하는 한 고등학교 학벌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학벌은 'KS 마크'라고 불렸다. 그러던 것이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평준화하자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대학별 고사 문제제기로 시작된 '부러진 화살'
대학별 고사에서도 출제 오류가 지적된 적이 있다. 지난 1995년 1월 성균관대 김모 교수가 수학시험을 채점하던 중 오류가 있음을 출제위원에게 지적한 것이다. 수학과에 재직 중이던 그는 같은 해 10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에 김 전 교수는 "대학 및 교육부 인사관리지침상 승진임용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측이 부당한 평가를 해 승진에서 탈락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전국 대학에서 189명의 수학과 교수들은 대한수학회와 별도로 "성균관대 입시 문항에 수학적인 오류가 있으며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도 문제가 있다"고 연대서명해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김 전 교수는 복직소송에서 패소했다. 그러자 그는 석궁을 들고 자신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법원은 석궁을 쏘지 않고 위협만 했다는 김 전 교수의 주장을 기각하고 석궁으로 쏜 혐의(살인미수)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지난 2012년 화제를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1994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도 여러 차례 출제문제의 오류 논란이 불거졌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에 국한하느냐 그 이상 수준까지 고려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2002학년도 수능 '공통과학 8번' 문제가 대표적이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복제쥐(C)의 유전자가 핵을 제공한 쥐(A)의 유전자와 똑같다고 간주하고, 복제된 쥐에 관한 옳은 설명으로서 '② 쥐 A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를 정답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유전자는 핵 이외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에도 존재하면서 핵과는 별도로 복제하고 분열한다. 문제에서 복제쥐(C)의 핵 유전자는 A와 동일하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B와 동일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까지 고려하면 정답이 없게 된다.
평가원은 "고교과정에서 형질은 핵유전자의 형질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답에 이상이 없다"며 일부 과학자와 수험생들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4학년도 수능 '화학2 72번' 문제에서는 보기 ⑤가 정답으로 발표됐다. 고교 교과과정에서 광학이성질체 중 이낸시오머만 배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광학이성질체에는 이낸시오머 외에 스테레오아이소머도 있는데 이는 대학교에서 배운다. 이를 고려하면 정답은 없다.
필자 견해로는 고등학교 범위를 넘어서는 것도 진실이라면 인정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의 목적이 진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온 것만을 답으로 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풀든 대학생이 풀든 정답이 똑같은 문제여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입시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는 출제하지 말아야 한다.
2008년 수능에서는 '물리Ⅱ' 문제의 채점결과를 번복해 수험생 등급을 재산정하고 정시모집 일정을 연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리II'의 11번은 배점이 가장 큰 3점짜리 문제로 이상기체의 상태변화를 물었는데 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생겼다. '이상기체'에 대한 보기의 설명 가운데 옳은 것을 모두 고르는 문제에서 평가원은 이상기체 중 단원자 분자에 국한된 성질을 정답으로 정했다. 하지만 대한물리학회는 다원자(이원자 및 삼원자) 분자까지 고려하면 다른 보기가 정답으로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엄밀하게 과학적 진실에 기반을 두면 정답이 바뀌어야 하지만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수준이 학교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복수정답으로 처리했다. 단원자 분자와 다원자 분자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모든 대학교 교재에 나와 있으나 고등학교에서는 일부 교과서 및 참고서에만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수능 출제 오류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끊이지 않는 출제 오류 논란… 근본적 해법 찾아야 할 때
가장 최근인 2014년도 수능에서도 출제 오류 논란이 야기돼 아직까지도 처리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지리 8번' 문제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였다.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이 크다는 설명이 맞는 것에 해당하는 ②번을 정답으로 정했다. 교과서에 실린 2009년 통계치를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문제지 그림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는 2012년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에 대해 수험생들과 전문가들은 2010년부터는 NAFTA가 EU보다 총생산액이 더 큰 상태로 역전돼 이 보기가 틀렸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객관식 문제에서는 최선의 답을 고르는 게 합리적"이라며 성적표 배부를 강행했다.
평가원이 2010년에는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지만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 ①번을 함께 정답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던 것과는 달리 2014년에는 단지 교과서와 EBS 교재에 EU의 총생산이 크다고 서술된 것만을 들어 정답에 이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수능 응시생 4명이 평가원과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2014학년도 수능시험 정답 결정처분 취소소송을 낸 결과 1심 재판부는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그 뒤 서울고법은 "등급결정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지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시점은 문제지의 지도에 표시된 2012년이 되고, 2010년 이후의 총생산액 및 2007년부터 2012년까지의 평균총생산액이 EU보다 NAFTA가 더 크므로 이 사건 지문은 명백히 틀린 지문"이라고 지적한 것. 법원에서 '정답이 없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의 출제 오류들은 입시전형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재채점으로 점수를 조정해 입시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2014학년도 입시가 완료된 후 서울고법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 어디에서든 실수나 오류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결과에서의 근소한 차이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때에는 이해관계자들이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사회적 파장이 커진다. 입시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런 만큼 오류를 바로 잡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및 개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