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전날 오전 청와대 정부세종청사 간 영상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경제 살리기에 있어 방치할 수 없는 것이 부정부패다. 비리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지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재계를 향해 쓴소리를 낸 것. 이를 두고 재계에선 전방위 고강도 사정을 예고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와 재계가 지난해부터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었던 '사내 유보금'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재계에 사내유보금을 풀어 투자에 나서줄 것을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좀처럼 금고를 열지 않았다.
실제로 기업 경영성과 분석기관인 CEO스코어가 발표한 10대 그룹의 83개 상장사 사내유보금 현황을 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총 537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6개월 전인 1분기의 508조7000억원에 비해 5.7% 증가한 규모다. 이 기간 유보율도 1679.1%에서 1733.6%로 54.5%포인트 상승했다.
내수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를 고민하던 정부는 특단의 대책으로 사내유보금 과세 방안을 꺼내들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 차원에서 기업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인센티브 등 여러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미래 투자재원 확보 차원에서 대기업이 쌓아둔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 재계에선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사내유보금 과세는 지금까지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된 상태다.
여기에 근로자 임금 인상을 두고 정부와 재계의 엇박자도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그룹. 삼성전자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가 임금을 동결한 것은 6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가 동결하자 삼성의 주요 계열사들도 합류했다.
삼성SDS도 최근 노사협의체인 미래공감협의회와 협의를 통해 올해 임금을 동결했고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도 임금 동결 방침을 확정했다. 이중 삼성SDI의 경우 지난해 연말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1% 내외로 임금을 올렸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동결이나 다름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유가하락으로 직격탄을 맞은 정유업계도 삼성의 임금 동결에 힘입어 동결 도미노 현상을 이어갔다. SK이노베이션은 노조 투표를 통해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고 일부 임원들은 아예 급여를 반납키로 했다. S-OIL도 올해 연봉계약서에 동결로 서명했다.
정부는 내수진작을 위해 재계에 임금인상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재계에선 일자리가 급감하는 '고용절벽' 현상을 보여 임금인상이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더해 경총은 올해 임금인상률을 1.6% 안의 범위에서 조정할 것을 권유했다.
최근의 가장 큰 화두는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적정 수준의 임금을 인상해 소비가 회복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며 "대기업의 임금인상이 당장 어렵다면 협력업체에 적정 대가 지급 등을 통해 자금이 중소 협력업체에 흘러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재계에선 손사래를 쳤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부문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임금은 한번 올리면 잘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는 기업부문의 임금을 전반적으로 높여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부작용을 없앨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동반돼야 한다"고 정부에 역으로 제안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금리를 1%대로 낮춘 것은 내수시장을 늘려 침체된 경기를 살리려는 의도"라며 "그런데 정작 자금이 넘쳐나는 재계에선 말을 듣지 않는 모양새다. 이번의 검찰의 압수수색도 일종의 재계를 길들이려는 목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재계의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출범 3년차를 맞았지만 아직까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결국은 기업을 흔들어 경기활성화라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