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띄울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뉴스1


#1. 미군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적군이 이를 정찰 드론으로 포착했다. 폭발물 드론, 1인칭시점(FPV·first-person-view) 돌진 드론이 차례로 달려들었다. 격파까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격파된 장갑차량이 다시 전장에 투입됐다. 전쟁이 아니라 훈련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미군 기갑여단이 전멸한 이 훈련은 약 3개월 전 독일에서 열렸다. 가상의 적군은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였다.

15일 미 전쟁부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제1기병사단 예하 제3기갑여단전투단 약 3500명은 지난 4~5월 독일 호엔펠스 훈련장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컴바인드 리졸브' 실기동 훈련을 했다. 미 육군이 유럽에서 연 2회 여는 다국적 훈련이다. 동맹·우호국 병력이 아군과 대항군으로 갈려 맞붙는데 이번엔 우크라이나군이 대항군이었다.



실탄 대신 레이저 신호와 공포탄을 쓰고 명중 여부는 센서와 관측 요원이 판정하는 형태였다. 훈련 결과 미군은 표준 전자전·대드론 장비를 갖추고 여단 규모가 전멸했다. WSJ는 미군이 2주간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하며 분산·은폐와 전자전 활용에 익숙해진 뒤에야 성적이 나아졌다고 보도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오랜 전쟁의 공식에 균열이 나고 있는 셈이다.

드론 중심 전쟁…"거대 무기체계 홀로 못 산다"

북한 노동신문이 2025년 5월14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전날인 13일 인민군(북한군) 훈련일꾼(간부)대회 강습체계 안에서 진행되는 병종별 전술종합훈련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뉴스1(노동신문)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이번 훈련 의미에 대해 "드론·위성·센서·AI(인공지능)가 결합되면서 대규모 병력과 장비의 집결은 곧 표적이 되고 탐지 이후 타격까지의 시간도 크게 줄고 있다"며 "분산·기동·위장·기만과 함께 소규모 전술제대의 신속한 판단과 대응력, 적응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거대 무기체계의 퇴장으로 읽는 시각은 경계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훈련의 교훈은 전차나 항공모함 같은 거대 무기체계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거대 무기체계가 단독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라며 "값싼 드론이 고가의 전차나 함정을 파괴할 수 있어 비용교환비가 달라졌지만 전차·전투기·항공모함이 불필요해진 건 아니다"고 했다.

양 연구위원은 "문제는 플랫폼의 크기나 가격이 아니라 탐지-결심-타격으로 이어지는 전쟁수행체계"라며 "유·무인 전력과 AI(인공지능), ISR(정보·감시·정찰), 전자전, 지휘통제를 결합해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하고, 먼저 타격하면서 동시에 적의 드론과 센서로부터 기존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기술과 물량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사고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기의 가격과 위력이 비례하던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러시아군 인명·장비 피해의 90% 이상을 만들어낸다. 수천달러짜리 드론이 수억원짜리 장갑차를 잡는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F-35 등 최첨단 전투기로 이란 하늘을 장악했지만 지난 3~4월 페르시아만의 미군 기지는 이란이 날린 드론과 미사일에 뚫렸다. 드론 중심의 전쟁과 값싼 정밀 유도무기의 대량 확산은 되돌리기 힘든 흐름이다.

드론의 위력이 커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지상 전력이 없으면 전장을 장악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상근 KAIST 연구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은 전방에 드론전투팀, 후방에 제병협동부대를 배치해 전자가 여건을 조성하면 후자가 러시아군 종심을 뚫고 상실한 영토를 회복하고 있다"며 "드론이 절대전력이 아니라 기존 제병협동전력과 융복합돼야 전장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미군, 중국산 부품 뺀 드론 조달…북한군은 러시아서 배운다

북한 노동신문이 2025년 4월5일 "김정은 동지께서 4월4일 조선인민군(북한군) 특수작전부대들의 훈련기지를 방문하시고 종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뉴스1(노동신문)


#2.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장갑차를 격파했다.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 증거였다. 'e포인트'가 쌓였다. 포인트는 곧 돈이 됐다. 우크라이나군은 비공개 온라인 장터에 접속해 새로운 드론을 샀다. 상급 부대의 승인도 긴 조달 절차도 없었다. 무기는 전장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설계됐다. 물건이 아니라 구독 서비스에 가까워진 것이다. 지난해 8월 도입된 우크라이나의 새 조달 체계다.

대형 플랫폼 중심이던 방산·조달의 공식도, 부품 원산지를 따지지 않던 관행도 달라지고 있다. 미 해병대는 중국산 부품을 쓰지 않는 드론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다 최근에야 미국산 대안을 찾았다. 최근 해병대 훈련에 쓰인 네로스아처(Neros Archer)는 기본형이 2000달러(약 280만원)다. 미 육군은 최근 이 회사와 최대 5억달러(약 7000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네로스는 주당 1400대를 만든다. 해병대는 지난해 말 향후 1년 안에 소형 FPV 드론 1만대를 확보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드론·AI 같은 첨단기술이 전장에 스며들면서 진영 간 기술 블록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드론 기술을 넘기고 있다. 러시아군 FPV 자폭드론 교관단은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평양과 원산에서 북한군을 교육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러시아 전장에 파병돼 실전 경험을 쌓고 그 대가로 첨단과학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조 교수는 "드론은 미국·이스라엘 같은 군사강국에는 더 이상 게임체인저가 아니지만 한국군을 상대하는 북한군에게 드론은 분명히 게임체인저"라고 했다.

북한이 쌓은 경험은 후방까지 겨눈다. 유 연구위원은 "이런 경험이 북한의 장사정포·미사일·특수작전 능력과 결합될 경우 한국군 지휘소와 비행장, 군수시설 등 후방 핵심시설에 대한 위협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양 연구위원은 북한의 드론과 미사일 '섞어쏘기'에 대해 "값싼 드론으로 제한된 요격자산을 소진시킨 뒤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등 핵심 타격수단의 미사일 방어망 돌파 가능성을 높이려는 전술"이라며 "날아오는 것을 모두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저가에는 저가무기로 대응하는 다층적·통합적 방어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군의 해법으로는 조직 개편이 꼽힌다.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6월, 러시아군은 지난해 11월 무인체계군을 창설했다. 북한군도 2024년 전방군단에 다목적 무인기 대대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12월 북한 무인기 대응을 위해 창설한 드론작전사령부를 오는 11월 국방부 직속 국방드론본부로 개편한다. 작전 권한은 각군으로 넘어가고 본부는 소요 발굴과 획득 지원을 맡는다. 드론을 전담해 싸우는 조직은 사라지는 셈이다.

조 교수는 "우크라이나·러시아가 별도의 군을 만든 이유는 드론과 로봇의 혁신 기술이 2주 단위로 템포가 강화돼 기존 부대가 기존 과업을 수행하면서 무인체계를 운용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우리군에도 드론병과를 창설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조직을 만들어도 조종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군 기준 드론 파일럿 양성에 1년 6개월이 걸린다. 조 교수는 "현재 한국군은 조종교육인 1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각군은 이를 3단계 전술적 운용 교육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했다. 유 연구위원은 "드론·AI·전자전 분야에서 신속한 시험·도입·개량 체계를 구축해 전장의 변화와 적의 학습보다 빠르게 적응하는 군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달라진 전쟁 문법, 미래전 승리 조건

①적응력: 새 기술 융합하고 반복 개선하는 적응 속도가 승부 판가름
②분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기존 공식 균열
③비용: 2000달러 드론이 수백만 달러 장갑차 격파
④융복합: 드론·AI가 기존 제병협동전력과 결합해야 전장 시너지 창출
⑤속도: 무기 성능보다 탐지-결심-타격 연결 속도가 승부처
⑥즉시 조달: 전선에서 곧바로 구매, 몇 주 만에 개량
⑦후방의 최전선화: 장거리 드론이 지휘소·비행장·보급로까지 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