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제 이상형이지만 전 싫씀미다(싫습니다). 왜냐구여? 전 술에 취한 여자는 딱 질색임미다(질색입니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기억하는가. “너 죽을래?”라고 협박하며 주인공 견우(배우 차태현)를 주도했던 ‘그녀’(배우 전지현)는 종전에 볼 수 없던 여성캐릭터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PC통신 문화를 기반으로 태어났다. 원작은 1999년 8월부터 나우누리 게시판에 ‘견우74’라는 닉네임의 한 남성이 ‘실시간 사랑레포트’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을 올린 글이다.

베스트소설도 아니고 등단을 위한 습작도 아니었다. 이모티콘뿐 아니라 ‘여써여’, ‘씀미다’ 등 철자법을 무시하는 PC통신 특유의 자유분방한 대화체로 써낸 간단한 에피소드 형식에 불과했다. 그만큼 쉽게 읽혔다. 지금 웹소설의 시초이기도 하다. 원작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해 5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엽기적인 그녀>는 그 시대 청춘들의 압박감과 욕망을 우울하거나 무겁지 않게 단순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것은 2000년대 인터넷문화의 힘이었다.

인터넷문화는 끊임없이 변신했다. 인터넷이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문화콘텐츠는 다양하게 진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웹소설, 웹툰이 쏟아졌다. 인기 웹툰이나 웹소설은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됐다. 그렇게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나 과자처럼 즐기는 ‘스낵컬처’는 새로운 문화시장으로 떠올랐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포스터. /사진=뉴시스 DB

◆ ‘바삭바삭’ 눈맛 사로잡는 스낵컬처

직장인 강민경씨(30)는 요즘 출퇴근길이 즐겁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회당 15분이 채 되지 않는 웹드라마를 본다. 한회를 보는 사이 지하철은 다섯 정거장을 달린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즐겨찾는 대학생 박영하씨(23)는 1분이 넘는 동영상은 절대 보지 않는다. 1분 안에 ‘빵 터지는’ 포인트(가장 재밌는 부분)가 없으면 영상을 넘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볼 때는 본방보다 다시보기를 통해 백종원 셰프가 나오는 부분만 골라본다.

언젠가부터 출퇴근시간 지하철 안 풍경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에 집중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만화 등을 즐긴다. 스낵컬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가볍게 집어먹을 수 있는 과자처럼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일컫는다.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콘텐츠는 출퇴근길이나 쉬는 시간 등 5~10분의 자투리시간을 책임진다.

제일기획이 지난해 말 서울·부산 등 8개 지역의 13~5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분 이내로 짧게 즐기는 미디어콘텐츠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젊을수록 좋아하는 콘텐츠를 시간과 장소, 기기에 구애받지 않고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규방송시간에 TV를 보지 않는다는 응답이 17%였다. 또 정규방송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못 봤을 때 재방송을 기다렸다가 보는 경우(42%)보다 다시보기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45%)가 더 많았다.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전체 조사대상의 67.8%가 2개 이상의 미디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TV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TV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는 식이다. 스마트폰이 널리 사용된 것이 스낵컬처가 퍼지게 된 주원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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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강한 ‘한눈거리’… TV3.0시대 온다

모든 것이 빠르게 스쳐가고 처리되는 시대, 스마트기기가 등장했다. 대중문화를 즐기는 모습은 갈수록 ‘짧고 간단한’ 형태로 바뀌었다. 빠르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잠깐의 시간도 그냥 멍하니 흘려 보내지 않는다.

스낵컬처라는 말은 2007년 미국 IT전문잡지 <와이어드>에서 처음 사용했다. 당시 <와이어드>는 미디어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한입 사이즈’로 구성된 포맷이 중요한 문화코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이어드>의 전망대로 최근 들어 사회 각 분야에 스낵컬처가 붐을 이룬다.

손 안에서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등을 보는 일은 이미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점차 호흡이 긴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평균 재생시간이 3~4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동영상을 즐긴다. 실시간으로 보는 것보다 다운로드해 보고 싶은 부분만 선택해서 보거나 핵심장면만 편집한 영상을 찾아본다.

스낵컬처의 중심에는 웹소설과 웹툰이 있다. 주로 흐름이 짧고 전개가 빨라 지하철 등에서 이동 중 보기 편하기 때문이다. 작가층도 다양한 나이대와 직업을 가진 이들로 형성돼 여러 독자를 사로잡는다. 특히 <순정만화>, <미생>, <마음의 소리>,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의 웹툰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그야말로 ‘웹툰 전성시대’를 열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미디어 선택은 물론 다른 미디어와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며 “다양한 미디어를 어떻게 연결해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미디어업계의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일부 기업은 자체 웹드라마를 만들어 홍보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블로그를 통해 자체제작한 웹드라마를 공개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제작한 웹드라마는 로맨틱코미디로 지난해 12월 누적조회수 1000만을 돌파하며 기업의 신마케팅 기법으로 떠올랐다.

스타 시인 하상욱씨는 자신의 SNS에 몇줄짜리 짧은 시를 올려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언론사들도 긴 호흡의 기사 대신 카드뉴스(주요 이슈들을 이미지와 간단한 텍스트로 재구성) 형태로 핵심내용을 제공한다.

학계 한 관계자는 “더 이상 TV를 TV로 보지 않는 시대가 왔다”며 “스낵컬처는 문화콘텐츠 시장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TV3.0시대가 다가올 것이란 얘기다. 스낵컬처가 만들어내는 문화콘텐츠시장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