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심 건 ‘면세점 땅따먹기’
15년 만에 나온 시내면세점 사업권에는 변수가 많다. 유통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면세사업에 뛰어들면서 자존심을 건 경쟁 체제를 맞은 것. 공교롭게도 이번에 출사표를 던진 8기업은 모두 오너십이 확실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그 주인공. 잇단 M&A로 덩치를 키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도 명단에 포함됐다. 오너는 8명이지만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합작 진출을 선언하면서 총 7곳의 법인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업계에서는 오너들이 직접 시내면세점 입찰에 ‘올인’할 만큼 이번 사업권에 사활을 걸었다고 평가한다. 그도 그럴것이 시내 면세점은 그간 ‘황금알’이라 불릴 정도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던 곳. 새 먹거리를 찾던 유통기업에게 이만한 사업 기회는 당분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숨은 전략이 치열하고 또 간절하다. 이번 승자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이유다.
오너들은 이제 막바지 전력 점검에 분주하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 직간접적으로 밝혀온 사업계획과 비책을 통해 ‘황금알 티켓’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극복해야 할 아킬레스건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 숨기고 싶은 아킬레스건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깜짝 동맹' 이후 면세점 대전의 단골손님이 됐다. 이들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면세점과 함께 한류·관광·쇼핑단지를 만든다는 구상을 내놨다.
HDC신라는 규모와 경험 면에서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강북이나 강남 상권보다 상대적으로 교통 체증 문제가 적고, 롯데 소공점(1만3236㎡)을 훌쩍 뛰어 넘는 아이파크몰의 넓은 부지(2만7400㎡)와 주차장이 강점으로 꼽힌다. 호텔신라가 지난 30여년 동안 면세업계를 이끌어 온 점도 빼 놓을 수 없는 가점 대상. ‘용산’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서울의 균형 개발론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관광객을 유치할 관광 인프라와 중소기업과의 상생 부분에선 유독 힘을 못 쓴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산 전자상가를 찾는 중국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긴 하지만 여전히 명동이나 강남 등에 비해 '들러리' 역할에 머물 것이란 우려다. 기존 면세 강자인 호텔신라에게 사업권이 또 주어질 경우 ‘독과점 논란’을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그룹의 20년 숙원사업인 면세점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롯데면세점이 점령한 명동을 후보지로 내놓으며 신세계 본점 명품관 전체를 면세점으로 전환하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 명동과 남산, 남대문시장을 ‘면세 타운’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여기에 남대문시장과 활성화 협약으로 상생 점수까지 챙기겠다는 전략.
하지만 교통·주차 문제가 약점으로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교통지옥’인 명동이 신세계의 면세점 취득으로 더욱 혼잡해 질 것이라는 우려다. 남대문 주변 일부 상인들의 강력한 반발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무역센터점을 내세워 유일한 강남권이라는 차별화 전략을 폈다. 아울러 면세점 운영으로 얻은 영업이익의 20%를 향후 5년간 기부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는 사회 환원 등의 평가 항목에 있어 다른 오너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또 모두투어, 엔타스듀티프리, 현대아산, 제이앤지코리아 등 중소·중견기업을 주주사로 참여시켰다는 점에서 가점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 인프라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무역센터점은 지난해 말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관광특구로 지정된 코엑스 단지 내라 호텔과 카지노, 쇼핑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연계돼 있다. 다만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에선 어깨가 무겁다.
◆ 승부수 띄웠지만… 전망은 글쎄
입지적인 강점을 안고 있는 동대문 상권에서는 롯데와 SK가 맞대결을 펼친다. SK네트웍스는 ‘케레스타’를 사업지로 낙점한 뒤 동대문을 패션과 문화, 쇼핑이 어우러진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또 중소기업청과의 협력으로 ‘스마트 중소상생’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롯데 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이 대부분 동대문을 후보지로 신청했다는 점이 적잖은 부담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독과점 논란을 의식해 뒤늦게 동대문 피트인을 후보지로 정했지만 외부에서 나오는 입찰 전망은 암울하다. 롯데 측에서는 신 회장의 승부사 기질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면세업계 1위의 명성이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한화와 이랜드도 저마다 승부수를 띄웠다. 김승연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한화갤러리아는 여의도 63빌딩을 사업지로 선정하고 그룹의 쇼핑·엔터테인먼트·식음료 시설을 유기적으로 엮는다는 구상이지만, 인근에 연계할 관광상품을 찾기가 마땅치 않은 점이 아쉽다.
홍대 서교 자이갤러리를 입지로 선정한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중국 내 사업 성공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홍대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경영 능력 부분에서 고민이 깊다. 세계 최대 면세점 듀프리, 중국 최대 여행사 완다그룹 등과 업무협약을 맺으며 능력을 보완했다지만 면세점 운영 경험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경쟁사 오너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도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성과보다 대기업 오너들과 경쟁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시각도 있다. 후보지로 정한 서교 자이갤러리 부지에 반년만에 면세점 건물을 신축해야 한다는 시간적 부담도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가진 장단점 중 관리 역량이나 주변환경, 핵심 차별화 등이 당락을 좌우할 포인트로 본다. 단 두장의 티켓을 향한 유통 오너들의 자존심 대결. 승리의 미소를 누가 짓게 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