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이용의 일차적인 목적은 숙박이다. 하지만 편안한 잠자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먹거리. 레스토랑의 음식이 내입에 딱 맞아야 진정한 호텔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법이다.
최근 밀레니엄 서울힐튼은 ‘맛’에 변화를 줬다. 전세계 호텔을 두루 섭렵한 독일인 번하드 부츠(52)씨를 신임 총주방장으로 영입한 것. 전문요리사로만 37년의 경력을 지닌 호텔업계의 베테랑 셰프인 그의 손길이 닿자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맛’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 호텔의 총주방장은 그 역할범위를 놓고 보면 단순히 요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호텔 레스토랑은 모든 식음료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곳인데, 저는 식음료 업장의 다양한 부분을 총괄합니다. 새로운 음식과 프로모션, 심지어 이벤트에도 직접 관여하죠.”
◆ 디저트 '남상츠'로 뉴요커 인기메뉴 재연
독일 출신이지만 정작 독일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다는 그는 베를린, 파리, 상하이, 호찌민, 발리 등 전세계 10여개 도시에서 글로벌 체인호텔의 총주방장을 지냈다. 특히 베이징 샹그리라호텔의 총주방장으로 근무할 당시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IOC 공식 오프닝 행사에 케이터링 서비스를 총괄하기도 했다. 한국 근무는 서울·부산 메리어트호텔에 이어 이번 밀레니엄 서울힐튼이 세번째.
“한국을 다녀간 지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그동안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사람들이 늘 새로운 것에 대해 개방적이고 잘 받아들이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인만의 음식메뉴를 만들기보다는 메뉴 본연의 전통적인 맛을 내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그가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총주방장으로 부임한 지는 불과 두달. 하지만 부츠의 ‘데뷔작’은 벌써 만들어졌다. 디저트 신메뉴인 ‘남상츠’(Namssants)가 그것이다. 남상츠는 ‘남산+크루아상+도넛’이 결합된 말로, 겹겹이 쌓인 크루아상의 바삭한 질감과 소프트롤의 부드러움, 그리고 도넛의 달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메뉴다. 보통 크루아상의 반죽이 '32겹'인데 반해 남상츠는 총 '288겹'이며 촘촘하고 바삭함이 튀겨진 도넛의 질감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가격은 개당 3000원.
“지난 2013년 여름 뉴욕 맨해튼 소호거리의 한 빵집에서 탄생한 디저트예요. 껍질이 겹겹히 벗겨지는 크루아상을 튀긴 후 갖가지 도넛 크림을 얹은 전대미문의 새로운 맛으로 당시 뉴요커를 열광시켰죠. 그 메뉴를 한국의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 재연했습니다.”
부츠 총주방장의 지휘로 탄생한 메뉴는 또 있다. 최근 오픈한 ‘카페395’의 야외 테라스에서 선보인 특별 음료와 디저트인데 ▲베이크드 알래스카의 꿈(부드러운 스펀지 케이크 위에 바닐라, 초콜릿, 딸기 아이스크림을 얹고 머랭을 씌워 오븐에 살짝 구운 디저트) ▲스파게티 아이스크림(딸기 소스와 휘핑 크림, 코코넛 플레이크로 장식한 재미있는 스파게티 모양의 아이스크림) ▲스윗 스팟 빙수(다양한 제철과일과 달콤한 젤리, 상큼한 요거트, 그리고 신선한 일리 커피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는 팥빙수)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부츠 총주방장은 처음에 파티쉐로 요리계에 입문했다. 15살 때 독일 제과제빵 학사 학위를 딴 게 그 출발점. 제빵사가 되는 게 목표였지만 제과제빵만으로는 전세계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점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10여개국의 나라를 돌면서 세계 각국의 요리를 배우는 일에 심취했고 또 자신이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요리전문가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크루즈선의 주방장으로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 크루즈선 주방장 경험… 터프했지만 끈기 배워
“친구의 추천으로 한때 크루즈선 주방장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에 비하면 그곳에서의 업무는 매우 터프했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고 하루에도 14시간이나 일했어요. 당시 크루즈선 주방 일을 했던 직원들의 절반은 승선 후 2주차에 포기하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현지요리를 만들고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이 현재의 저를 만들었고요.”
한국나이로 50대 초반이지만 그는 아직 ‘총각’이다. 요리가 좋았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문화에 젖다보니 애정을 쏟을 대상을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았다는 게 그의 소심한 변명.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결코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심장, 맛, 눈. 요리할 때 이 세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맛이 있어야 하고, 시각적으로 사로잡아야하며, 먹는 사람의 감성까지 이끌어 내는 메뉴야말로 최고의 메뉴가 아닐까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제3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