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대참사는 어떤 사고였을까.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이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일까. 그렇지 않다. 이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가 20년 전 발생했다. 지난 1995년 6월29일 서울 강남권 한복판에서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것이다. 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부상자는 937명을 기록했다.

재산피해는 약 2700억원에 달해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조원 규모다. 부상자의 상당수는 신체가 절단되는 끔찍한 중상을 입었다. 지난 2013년 4월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붕괴사고로 1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까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건물 붕괴사고로 인한 사망자수 세계 1위를 유지했다.


교대역 인근에 세워진 삼풍백화점은 앞으로는 법원을 마주 보며 뒤로는 대규모 주거단지인 삼풍아파트가 있어서 백화점 이용객에는 상류층이 많았다. 삼풍백화점은 매출액 기준으로 당시 업계 1위였고 규모는 롯데백화점 본점 다음으로 컸다.

백화점이 붕괴된 시간은 오후 5시57분으로 사람이 많은 시간대여서 고객과 직원을 합해 1500명에 달하는 사람이 무너지고 콘크리트 더미에 깔렸다. 게다가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건물 파편은 법원까지 날아갔다. 무차별적으로 튀는 파편으로 인해 길 가던 사람을 비롯해 백화점 밖에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가 부상을 당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인 지난 6월29일 한 유가족이 헌화 후 희생자의 이름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생과 사의 엇갈린 운명
사고 당일 오후 필자의 친척은 친구와 함께 삼풍백화점으로 나들이를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날씨가 너무 더워 약속을 취소해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어떤 남자는 쇼핑 중 여자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여자친구를 내버려둔 채 혼자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건물이 무너졌고 여자친구는 사망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인명피해의 현장에는 생과 사의 운명이 엇갈린 경우가 꼭 생긴다.

삼풍백화점은 여러 증언을 통해 붕괴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이 무너지던 날 경영진이 직접 눈으로 균열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묵과하고 영업을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직전 삼풍백화점 책임자는 사람들을 대피시키지도 않은 채 먼저 건물을 빠져나왔다. 세월호 사고와 흡사하다.

“긴급히 대피하라”는 소리는 오후 5시50분께 백화점 직원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이때 이유도 모른 채 재빨리 대피한 사람들은 살 수 있었다. 반면 지하층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 소리를 듣지 못해 피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백화점 방문고객 중 그 순간 건물의 어디에 있었는지에 따라 생사가 갈린 것이다.

오후 5시57분 5층 바닥의 기둥 2개가 무너지기 시작한 5층짜리 건물은 불과 20초 만에 지하 4층까지 완전 매몰됐다. 붕괴의 시작부터 완료까지 워낙 짧은 순간에 이뤄졌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직전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쏟아져 내리는 콘크리트와 잔해 속에 순식간에 파묻힐 수밖에 없었다.

사고 후 건물잔해 더미 속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애절한 소리와 신음과 비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잔해에 파묻힌 채 겉으로 손을 내밀어 손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다.

구조장비가 부족해 구조요원, 소방대원, 현지군인들은 손으로 철근 등을 헤치며 구조작업을 벌였다. 잔해 속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을 때는 피투성이 모습이라도 사람들이 환호했다. 워낙 부상자가 많아 서울 각지 병원의 응급실은 죄다 만원이었고 마치 전쟁터처럼 병실 밖에서 환자를 치료를 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극적 구조된 최후의 3인, ‘감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극적으로 구조된 3인의 최후 생존자는 온 국민을 감동시켰는데 필자 역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 꼼짝도 못한 채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기 전까지 생존했던 기간은 최명석씨 11일, 유지환씨 13일, 박승현씨 17일이다.

모두 생존력이 강한 20세 전후의 젊은이였다. 사고 발생 열하루 만에 구조된 최명석씨는 소방수와 빗물을 받아 마시며 버텼다고 한다. 그가 구조돼 가족 품에 돌아갈 때 모든 국민은 마치 내 가족이 살아온 것처럼 함께 기뻐했다. 그는 구조된 후 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으리라 여겨질 때쯤 그가 구조됨에 따라 국민들은 또 다른 기적을 바랐다. 바람대로 13일째 유지환씨가 추가로 구조됐다. 구조 직후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냉커피라고 답했다. 참사 17일째에는 박승현씨가 기적적으로 생환해 또 한번 세상을 흥분시켰다. ‘최후의 생존자’로 불리는 세사람은 이후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됐다고 한다.

지난해 개그맨 J씨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를 희화화하며 충격적인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삼풍백화점 생존자 중 여성 A씨로부터 모욕 및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 당하자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외형지향주의 되돌아봐야

수많은 사람이 참혹하게 죽은 자리에는 지금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 참사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사고현장 부지를 인수해 주상복합건물을 건설한 대상그룹은 삼풍백화점 희생자 유가족에게 6억원을 지원했다. 유가족들은 이 돈으로 지난 2001년 4월 ‘삼풍장학재단’을 설립,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가족의 자녀들을 돕는 온정을 베풀었다.

삼풍참사위령탑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양재동의 양재시민의 숲 한쪽에 세워졌는데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2006년에는 삼풍백화점 붕괴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가을로>(김대승 감독)가 관객에게 선을 보였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재난관리 방향이 ‘사후복구’에서 ‘사전예방-신속대응’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그 후로도 큰 사건이 여럿 터지면서 여전히 안전에 대한 시스템과 조직관리가 미흡함이 드러났다.

외형적으로는 초호화 백화점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안전을 무시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국사회에 외형지향주의가 아직도 남아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