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커피향이 그윽하게 퍼지고 잔잔한 음악소리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어우러진 카페. 여느 커피숍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은 바로 ‘어르신 카페’다. 평균연령 65.5세의 어르신 10명이 바리스타의 꿈을 키우며 직접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린다.
어르신끼리 카페를 운영하려면 힘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접어두길. 전문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하고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이 점장으로 나서 카페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일자리를 얻고 청년은 창업노하우를 얻어가니 가히 ‘상생 카페’라고 부를 만하다.
문을 연 지 이제 갓 한달 남짓인 이 카페에서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서옥렬씨(여·65)와 노한울(남·29) 점장을 만났다.
◆어르신의 일자리+청년의 꿈=어르신 카페
7호선 장승배기역 1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보면 건물 한켠에 갈색 목재로 만들어진 ‘커피현상소’가 보인다. 내부에 마련된 자리에는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있는 젊은이보다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이 더 쉽게 눈에 띈다.
카페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는 노한울 점장은 “아무래도 어르신이 직접 일을 하니까 어르신 손님들이 편한 마음에 자주 찾는 것 같다”며 “주변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손님들은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가져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노 점장은 주로 주문을 받고 음료 만들기는 어르신이 담당한다. 이때 손님이 들어와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서옥렬씨는 원두를 갈고 커피머신을 이용해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시작했다. 서씨는 아직 어색한지 입으로 순서를 되뇌다가 모르는 부분은 점장에게 묻기도 하며 커피를 만들었다.
서씨는 “커피라고는 ‘믹스커피’밖에 마셔보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아메리카노라는 게 유행해서 만드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며 “처음에는 이색적인 일이라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평소 한번쯤 해보고 싶던 일이기도 하고 노 점장이 친절하게 알려줘서 여러모로 든든하다”고 말했다.
손님이 나간 후 노 점장은 서씨와 함께 커피보다 난이도가 높은 빙수 만들기 연습에 들어갔다. 노 점장은 주문이 있기 전에 미리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어르신에게 기술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 빙수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재료를 직접 선택하고 기계를 조작해 보면서 꼼꼼히 교육했다. 배우는 어르신의 눈빛은 마치 아이가 신기한 모빌을 보듯이 초롱초롱하다.
노 점장은 대학졸업 후 1년간 대형유통회사를 다니다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직업교육기관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창업을 하려면 점포자리 확보, 인테리어업자 섭외, 거래처 계약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노 점장은 “막상 카페를 창업하려니 막막하던 차에 한국씨니어연합에서 지원하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형 사업을 알게됐다”며 “씨니어연합의 소개로 광주의 유명 카페인 ‘커피현상소’에서 노하우를 전수받고 커피기술도 연마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일하는 10명의 어르신 중 1명만 바리스타로 일해본 경험이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했다. 서씨는 젊을 때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20여년이 넘도록 한복 바느질을 했다. 서씨는 “원단만 있으면 한복 한벌쯤은 너끈히 만들 수 있다”며 “지금도 결혼을 앞둔 아들을 위해 틈틈이 한복을 만든다”고 귀띔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노 점장이 “그럼 저도 결혼할 때 한복 한벌만 지어주세요”라며 너스레를 떨자 서씨는 “아유~ 당연히 우리 점장님은 한벌 만들어 드려야지”라며 웃는다. 서씨는 노 점장이 결혼할 때쯤이면 한복 만들 시간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서씨는 요즘 집에 가면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떼 등 생소한 단어를 외우기도 벅찬데 그 음료들을 만들려고 하니 골치가 아파서다. 그래도 하나하나 익혀가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서씨는 “한국씨니어연합에서 치매 관련 교육을 들었는데 바리스타교육을 받으며 돈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그냥 커피 만드는 일이겠거니 쉽게 생각했는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늘그막에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꿈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서씨는 “요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카페를 하나 열고 싶다”며 “꿈이 생기니 일이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꿈을 꾸는 건 노 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하면서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고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다. 지혜를 얻는 기분”이라며 “이런 경험을 통해 3년 뒤에는 지금보다 3배 넓은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다. 물론 그때도 어르신을 채용할 계획”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