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 최고령 선수였던 민인기가 지난 7월말 은퇴, 후진양성에 제2의 삶을 살기로 했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 현역 최고령인 민인기(2기·선발급) 선수가 전격 은퇴했다고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가 10일 밝혔다.
민인기는 지난 7월 11일 광명스피돔 5경주를 끝으로 30일 등록선수 신분을 취소하는 한편 '대전지역 경륜훈련매니저'로 변신했다. 1995년 2기로 경륜에 데뷔한 이후 20년 만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온 것.

민인기는 "은퇴 후 경륜후보생을 옥돌로 만드는 훈련원 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대신 덜 익은 과일 같은 선수들을 제대로 숙성시키는 훈련매니저로 일하며 그간 쌓은 노하우로 지역선수들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정말 오랜 기간 선수로서 뛰었다"면서 "정든 벨로드롬을 떠나는 게 섭섭하지 않을 리는 없지만 박수칠 때 떠난다는 생각과 성장하는 후배들을 위해 퇴진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민인기는 6월 20일 창원 5경주에서 2착으로 연승 66.2배의 주역이 됐다. 마지막 입상 경주였다. 마지막 경주는 지난 7월 11일 광명경주. 내선 6초 주행 실격으로 퇴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일주일에 3일 경기를 뛸 수 있는 체력이 여전했지만 선수보다는 후배양성을 택했다.

사이클과의 인연은 대천중 2학년 때이며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비군을 지냈다. 주종목은 1㎞ 트랙경주. 이후 1995년 경륜에 데뷔해 사이클 선수출신이 아닌 '비선수 요람'이라 일컫던 '잠실·용인팀' 수장이 됐다. 자전거를 처음 접했고 생소한 경륜 세계에 뛰어든 젊은 선수들에게 2~3년 동안 제주동계훈련 등을 지도하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경륜 태동기인 당시, 민인기의 활약으로 비선수 출신이 많았던 잠실용인팀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였다.


경륜이 태동한 잠실부터 현재 광명스피돔에 이르기까지 20년간 벨로드롬에는 늘 민인기의 궤적이 있었다. 2006년에는 45세 나이로 매일경제신문배 선발급 대상경주 챔피언에 오르며 대상경주 최고령 우승자로 기록됐다. 대상경주 선발급 3회 우승과 2000․2003년 모범선수상 2회를 차지했다.

그의 은퇴 소식을 접한 경륜팬들은 "짧은 시간 열정을 불태웠던 조호성선보다 민인기를 더 높이 평가한다" "최고령 민인기 은퇴, 아쉽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등 아쉬움을 나타냈다.

인기 또한 대단했다. 민인기의 인기는 과거 '경륜 지존'인 조호성과 현재 슈퍼특선급 선수들에 버금갈 정도였다. 네티즌 선정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를 앞두고 경륜 홈페이지의 선발급 선수 인기투표에서 늘 정상권이었다. 일례로 2006년 5월 열린 네티즌배에서는 조호성의 뒤를 이어 전체 득표 2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선발급 선수가 내로라하는 특선급을 제치고 전체 2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은 무엇보다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평택에서 개인훈련을 하면서도 하루를 거르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경기에 임할 때는 후배들과의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만 체력적인 열세로 자력 승부보다는 마크 추입에 의존하는 전술을 구사하긴 했으나 막판 직선 주로에선 자전거가 부서져라 혼신의 힘으로 역주,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세리머니다. 결승선을 통과하면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연방 키스와 하트를 날렸다. 또 싸이 강남스타일의 말춤 세리머니를 재해석해 선보이기까지 했다.

경륜 관계자는 "오랫동안 경륜의 이슈메이커로 사랑받았던 그의 은퇴가 매우 아쉽다. 경륜팬들에게 큰 기쁨을 줬던 그의 활약은 앞으로 후배들에게 오랫동안 귀감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인기 선수 프로필
▲1961년생 ▲1995년 경륜 2기 ▲청룡초(충남)-대천중-천안상고-평택대 ▲모범선수상 2회, 공로상 1회, 우수경기선수상 6회 ▲2002 매일경제신문배 대상경륜 선발급 1위 ▲2004 SBS스포츠채널배 대상경륜 선발급 1위 ▲2006 매일경제신문배 대상경륜 선발급 1위 ▲2010 문화일보대 대상경륜 선발급 3위 ▲통산 193승(1113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