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것이냐고요? 이것은 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쓰이지 못하는 인적자원에 대한, 그 자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문제입니다.”

‘8%’ 여성 벤처기업을 위해 자신의 2년을 바치기로 한 이가 있다. 지난 2월 제9대 여성벤처협회장으로 취임한 이영(46) 테르텐 대표다.

◆"여성 기업비중 8%, 문제는 생존"


올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 전체 벤처기업은 3만여개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중 여성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진 것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서 여성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전체 벤처기업 3만여개 중 여성 벤처기업 수는 2400개가량으로 8.5% 수준에 그친다.

“2007년만 해도 3.5%에 불과했어요. 지난 2013년 들어서야 8%대에 진입했죠. 올해 뒷자리가 바뀌었고요. 6년 만에 빠르게 성장했는데 고민해 봐야 할 게 있어요. (벤처기업 수가) 느는 게 중요한지, 아니면 살아남는 게 중요한지를요.”

이 회장은 숫자의 증가는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생존이다.


“창업은 이미 트렌드예요. 유입은 빠를 수 있죠. 코스닥 상장사를 보면 여성을 CEO로 둔 기업은 지난해 14개에서 15개로 올해 1개사가 늘었어요. 이 중 여성벤처기업은 7개. 이 비율이 전체에서 몇이나 될까요? 많은 여성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요. 3년의 데스밸리(고비)를 통과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높죠. 양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질적성장과의 갭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여성벤처기업이 3년 후에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회나 정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자유치나 판로개척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이 불리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는 경제계, 그중에서도 벤처분야에 한정된다.

“흔히 ‘무슨 차별이 있단 말이야?’ 그렇게 얘기해요. 전 모든 여성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실제 제도권 안에서는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죠. 공무원사회가 특히 그래요. 시험을 보고 입사할 수 있는 곳에선 프로세스(과정)가 굉장히 공정하죠. 그런데 비즈니스는 그렇지 않아요. 팀플레이가 기본이기 때문에 휴먼 네트워킹(인간관계 형성)이 중요합니다. 남성들에게 이런 휴먼 네트워킹은 산소를 마시는 것과 같아요. 고향동기, 대학동기, 군대동기,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죠. 산소가 없다면요?”

이 회장은 여성의 경우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사업 파트너와의 협업 시 파트너를 파악하는 데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경계기간이 길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난 15년간 보안 소프트웨어전문기업 테르텐을 이끌면서 생애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만났다.

이영 여성벤처협회장.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은행에 가도 남자, 물건을 팔러가도 남자, 모두가 남자였어요. 그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죠. ‘아무개 어디 나왔다던데, 어떤지 알아?’ 그럴 수 있나요? 친구(여성)들이 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데? 그때 이 게임이 공정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자신의 선택인 만큼 투덜댈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30초에 주파한 것을 우리 후배들은 20초에 주파하게끔 해주고 싶은 거죠.”
그는 투자를 유치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등 사업 전반의 과정이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여성벤처기업이 생존할 길이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에서 여성임원을 많이 뽑는 추세지만 그들은 이제 40대예요. 판로 개척을 위해 관련기업을 찾아가면 대부분의 임원은 50대 남성이죠. 이분들이 여성과 비즈니스를 해봤을까요? 이들이 마주앉아 아주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남성들이 공기처럼 느끼는 인프라가 여성들은 고가의 비용을 들여서, 또 끝없는 노력을 통해 확보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인적자원 활용, 3만달러시대 진입"

이 회장은 이런 어려움이 곧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자원은 사람이에요. 경제계에 선수층이 넓어지면 몇년째 제자리걸음인 국민소득의 3만달러 진입에도 용이하겠죠. 지금까지 글로벌경제 10위권 안에 입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제조, 전자, 기계 등의 남성 주도업종이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증하면서 대졸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준비된 여성인력이 많아졌어요.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하기 위해선 쓰이지 않는 자원에 대한 족쇄를 풀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은 앞으로 2년간 여성벤처기업의 판로 확대를 위해 회원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첫 단추로 지난 3월 중국 IZP그룹의 해외직구사이트인 하이쉔닷컴과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이달에는 닷컴 내에 여성벤처기업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여성벤처기업관을 열었다. 여성벤처기업은 2년간 입점비를 면제받을뿐더러 판매 수수료도 우대(3~5%) 받을 수 있다.

“협회는 정당이 아니에요. 임기 내 무엇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죠. 선배(역대 회장)들이 후배들을 위해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었듯 저 역시 인식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이 회장은 대표로 몸담고 있는 테르텐에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현재 테르텐은 모바일 디바이스 화면 보호와 블랙박스, CCTV와 같은 멀티미디어 영상의 위변조를 막는 시스템을 통해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가상화 화면 보안 솔루션을 출시하며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이 회장은 "테르텐의 대표로서 앞으로 보안기술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선진기술을 습득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