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예약만 1만대… 그래도 갈 길 멀다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는 세계시장을 목표로 야심차게 개발한 최첨단 프리미엄 세단이다. 그 동안 축적한 모든 기술력을 집약하고 최고의 성능과 품질 관리로 탄생했다. 세계 최고급 명차들과 당당히 경쟁할 것이다.”
지난 9일 저녁 6시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현대자동차의 럭셔리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차 EQ900 출시행사에서 메인호스트로 나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사뭇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EQ900’(이큐 나인헌드레드)는 세계시장을 목표로 야심차게 개발한 최첨단 프리미엄 세단이다. 그 동안 축적한 모든 기술력을 집약하고 최고의 성능과 품질 관리로 탄생했다. 세계 최고급 명차들과 당당히 경쟁할 것이다.”
지난 9일 저녁 6시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현대자동차의 럭셔리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차 EQ900 출시행사에서 메인호스트로 나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사뭇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에쿠스’는 잊어라
이날 행사장 옆 주차장에는 수백대의 에쿠스가 들어서 있었다. 이 자리에 초청받은 정·관계 인사와 협력사 임원들의 차다. 이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듯 에쿠스는 국내시장에서 일정한 판매량이 보장되는 차라고 여겨졌다. 국내기업 CEO 대부분은 ‘에쿠스’를 타는 걸 자부심으로 느낀다.
하지만 이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에 불과했다. 해외시장에선 동급차량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판매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시장에서도 수입차에 밀려 입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올 들어 11월까지 에쿠스의 누적판매량은 4677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메르세데스-벤츠는 마이바흐를 포함해 9458대의 S클래스를 국내시장에서 판매했다. 풀체인지를 앞두고 판매가 감소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고급차 시장에서 에쿠스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초대형 세단 살리기’는 현대차그룹이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한 가장 큰 이유다. 이날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제네시스 EQ900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에쿠스를 완전히 버렸다”고 평가했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강조하기 위해 기존 에쿠스의 정체성을 완전히 지웠다는 것.
육각형 형태의 그릴디자인부터 측면부의 캐릭터라인에 이르기까지 외관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이 최초로 적용된 G80(기존 제네시스)와 흡사했다. 5205mm의 전장길이가 뿜어내는 압도감이 G80의 상위모델임을 증명했다. 에쿠스의 흔적은 후면부 테일램프 디자인에서 살짝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외관뿐 아니다. 쇼퍼 드리븐(전담기사가 운전) 카로 여겨졌던 에쿠스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운전의 재미를 더해 오너드리븐(오너가 직접운전) 카로서 가치를 키운 점도 ‘제네시스’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BMW, 벤츠 등의 플래그십 모델에서도 나타나는 트렌드다.
EQ900은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R-MDPS)과 ‘가변 기어비 스티어링’(VGR)을 통해 안정적인 핸들링 성능과 민첩한 조타감을 구현했다. 또 람다 3.3ℓ 터보 GDi엔진 모델을 추가했다. 3.8ℓ엔진보다 배기량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출력과 토크는 오히려 높다.
EQ900은 프리미엄브랜드 제네시스 내에서도 가장 높은 클래스의 모델로서 플래그십 세단에 걸맞은 기술과 고급스러움을 갖춰야 하는 숙제도 가졌는데,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재 세상에 있는 어떤 자동차와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 고급소재와 첨단사양이 탑재됐다”고 자신했다.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이러한 자신감에 근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160mm에 달하는 축간거리로 뒷 좌석 무릎공간은 여유가 넘쳤고 가죽시트의 질감도 어떤 명차에 뒤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명품 가죽 가공 브랜드 ‘파수비오’(PASUBIO)와 협업을 통해 천연가죽시트를 개발했으며, 스티치(바늘땀) 하나도 오스트리아의 ‘복스마크’(BOXMARK)와 공동개발을 했을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썼다. ‘고급스러움’이란 기준만 놓고 보면 벤츠 S클래스의 실내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뿐 아니라 EQ900은 현대차그룹의 모든 기술력이 집약된 모델로 무인차 기술이 집약된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을 비롯해 14가지 신기술이 적용됐다.
◆‘어깨 무거운’ EQ900
갓 출시된 EQ900의 어깨는 무겁다. 에쿠스가 지난 17년 동안 고전한 해외시장, 특히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에서 그 영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EQ900 뿐 아니라 제네시스 브랜드 자체의 실패로 직결된다. 이는 비단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을 증명하듯 이번 신차 출시행사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하기도 했다. 총리가 민간기업의 제품 출시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황 총리는 이날 축사를 통해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액의 13.2%, 제조업 고용의 11.4%를 담당하며 국가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EQ900가 첨단 기술력과 우수한 디자인을 토대로 세계적인 명차들과 경쟁하면서 우리나라 수출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창조경제의 한 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FTA(자유무역협정)의 성과를 활용해 자동차 수출이 확대되도록 노력하고 규제합리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며 EQ900에 정부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EQ900의 시작은 일단 희망적이다. 출시 전 사전계약 물량이 1만대를 넘어섰다. 연말 개별소비세 인하혜택과 기업의 임원인사 시즌 등이 맞물려 나온 결과임을 고려하더라도 플래그십 세단으로서는 유례없는 기록이다.
이에 따라 제네시스는 1만5000대로 설정했던 판매목표를 2만대로 상향 조정하는 한편 당초 내년 하반기에 계획했던 미국진출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네시스 브랜드가 지나야 할 ‘가보지 않은 길’이 쉽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품질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술과 품질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부분이고 스토리텔링으로 명품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