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기조가 장기 고착화될 조짐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를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저유가는 비용절감 측면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유가하락으로 인한 글로벌시장의 위축과 중동지역 경기침체는 악영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최근 국내증시는 저유가 수혜보다 글로벌경기 침체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전통적인 피해주로 꼽혔던 업종의 하락은 물론 수혜주인 항공·해운 등도 힘이 빠진 모양새다.
◆ 저유가 수혜주 몰락… 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 항공·해운 등이 거론된다. 이들 업종은 유가가 하락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특히 항공업은 총 운영비의 30%가 유류비로 구성돼 시장에서는 실적개선 최선호주로 꼽는다. 하지만 최근 항공주의 움직임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9일 기준 대한항공의 주가는 장중 2만71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지난 4월 5만4000원을 넘나들던 것에 비해 거의 반토막 난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9000원이던 주가가 4500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들 항공주의 움직임은 유가가 급락하던 지난 4분기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글로벌경기가 위축되며 항공화물운송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송재학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거리 노선 중심의 여객수송은 메르스 이후 회복됐지만 화물운송은 유럽·중국 등의 경기부진으로 약세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최근 화물운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감소한 것에 비춰보면 4분기 영업이익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운업종도 유가 하락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좌초했다. 통상 해운업도 유가가 싸면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또 기름을 사용하는 업체는 유가가 상승할 경우를 대비해 연료를 저장해 놓으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따라서 액체화물을 운반하는 탱커의 물동량이 늘어나 해운업종의 매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김승철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저유가 상황은 해운업종에 호재지만 해운시장 상황의 약세로 운임하락현상이 나타난다”며 “물동량은 증가했으나 기존의 선복량이 많아 운임 상승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진해운은 4분기 들어 지난 9일까지 25% 하락했다. 이달 초 8거래일 연속 약세로 장을 마감하기도 했다. 현대상선과 대한해운도 각각 12%가량 빠지며 저유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 사우디 자금, 국내증시 이탈
통상 저유가 수혜주로 꼽히는 업종이 침체한 데는 국내증시의 전반적인 약세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코스피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불안감과 중국발 글로벌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며 외국인들이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지난 10일 기준 2개월간 전체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을 팔아치운 규모는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 영향으로 우리 증시도 2000선을 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상황이다.
특히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은 중동계 자금이 외국자금 이탈의 중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5개월간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내증시에서 3조3500억원을 순매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사우디를 포함한 전체 중동계 자금의 순매도 자금인 3조2000억원보다 더 큰 규모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우디는 해외증권, 외화통화, SDR 등으로 전세계 3위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있다”며 “유가급락 이전인 지난해 6월과 올 10월 항목별 증감을 보면 해외증권이 감소하고 외화통화는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수입의 87.5%를 석유부문에서 얻는 사우디가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해외증권 매각을 추진한다는 뜻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사우디가 국내증시에서 추가로 팔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 애널리스트는 “사우디의 국내증시 순매수금액은 유가급락 이전 6조4000억원에 달했다”며 “지난 10월 여기서 1조8500억원을 순매도했는데 이 규모가 지속되더라도 사우디의 단기 순매도 가능금액은 1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지속적인 수급 악화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 그래도 수혜 업종은 있다
글로벌경제 둔화와 국내증시의 수급적인 여건으로 대부분의 업종이 울상인 상황에서도 빛나는 종목은 있다. 전문가들은 페인트주와 정유주가 유가 하락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9일 조광페인트는 전일 대비 6.41% 오른 1만2450원에 거래를 마치며 이틀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노루페인트와 삼화페인트도 각각 4.95%, 2.13% 상승하며 장을 마감했다. 페인트는 전체 매출원가의 약 80%가 원재료 구입에 쓰이기 때문에 유가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박세라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페인트산업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입주물량이 늘면서 건설용 도료 판매가격은 유가의 하락보다 낙폭이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박 애널리스트는 “건설 전방산업의 비중이 높은 페인트회사인 KCC가 최선호 종목”이라고 덧붙였다.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정유주도 수혜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적으로 정유업종은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 손실로 인한 실적 부진이 예상된다. 하지만 유가가 한동안 폭등하거나 급락할 가능성이 낮아지면 정제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부각돼 수혜주가 될 수 있다.
손영주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이후 유가가 하락했는데도 정제마진이 상승하자 정유업종의 주가가 올랐다”며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은 결국 복구될 것이고 정제마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높은 정제업 집중도로 유가 약세의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된다”며 S-Oil을 업종 내 최선호 종목으로 추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