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이 벌어진 상처를 봉합한다. 바늘과 실을 쥔 사람은 여승주 신임 대표이사다. 그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의 개혁 행보로 상처 난 부위를 하나씩 꿰매는 과제를 안았다. 현재로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봉합할지 확실치 않다.
다만 주 전 대표의 흔적을 지우려는 여 대표의 의지가 확고하다. 전직원에게 “열린 귀를 갖고 직원 여러분의 의견을 자세히 듣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부분을 봐도 짐작된다. 업계에서 흘러나오는 주 전 대표의 소통부재 평가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반년 전 내정된 정통 한화맨
한화투자증권은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신임 대표에 여 부사장을 선임했다. 여 대표는 1960년 서울생으로 경복고와 서강대를 졸업했다. 1985년 경인에너지에 입사한 후 30여년간 한화그룹에 몸담은 ‘한화맨’이다. 그는 2002년 한화생명 인수합병(M&A) 시 실무총괄을 맡은 후 재정팀장, 경영혁신팀장, 전략기획실장(CFO)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과정에서 2010년 한화생명 거래소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의 실무를 총괄지휘하는 등 한화그룹 내 각종 금융·재무·회계 관련 업무에서 뛰어난 성과도 달성했다. 이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서 재정·전략팀장을 역임했고 이후 재무·보험 등 금융업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가진 ‘금융통’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한화그룹이 정통 한화맨이자 금융통으로 불리는 여 부사장을 계열사 대표자리에 앉힌 것은 그룹과 갈등의 골이 깊었던 주 전 대표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여 대표는 2014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선택과 집중에 기반을 둔 기업경쟁력 고도화전략 중 하나인 삼성 4개 계열사(한화테크윈·한화탈레스·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 M&A의 핵심적인 실무책임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삼성 4개 계열사 인수는 국내 첫 대기업 간의 자발적 M&A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 대표는 한화그룹이 방산·유화부문에서 국내 1위를 달성함과 동시에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주 전 대표가 그룹의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인수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무산 가능성을 겨냥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투자자의 기본지침서라 할 수 있는 보고서가 매수 일색이라는 지적을 타개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주 전 대표는 회사의 수익성 강화에는 뒷전이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이는 그룹과의 마찰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이자 지난해 9월 임기가 6개월가량 남은 시점에서 여 부사장이 차기대표로 내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통 부재 전 대표와 다른 길
여 대표는 과연 주 전 대표가 추진했던 개혁방안을 그대로 이어갈까. 업계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동안 주 전 대표가 밀어붙인 서비스선택제 시행, 연공서열제 폐지 및 직무별 연봉제 도입, 과당매매 제한 등에 대한 내부 불만이 누적된 탓이다. 특히 서비스선택제 시행으로 갈등이 폭발하면서 지점장 50여명이 집단항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주 전 대표의 일방적인 개혁은 한화그룹이 추구하는 ‘의리경영’과 맞지 않아 직원들에게 적잖은 부담을 줬고 한화투자증권에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주 전 대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을 맡으면서 대표자리에서 물러났다. 애초 주 전 대표는 3월 주주총회까지 대표직을 유지할 예정이었다.
업계에서는 주 전 대표의 소통 없는 밀어붙이기식 경영색깔을 지우기 위해 여 부사장을 한화투자증권 대표로 선임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그룹 수뇌부와 주 전 대표가 갈등을 겪으며 문제가 된 부분을 여 대표를 앞세워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
특히 여 대표 체제로 새롭게 출발한 한화투자증권은 앞서 10여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새 경영전략 수립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한화투자증권은 CEO 교체 때마다 매번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화투자증권이 자주 마찰을 빚었던 주 전 대표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사전작업을 진행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 대표 역시 지난해 서비스선택제 시행 등을 놓고 사상 초유의 집단항명사태가 불거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이를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여 대표는 “일터가 인생의 즐거움이고 보람과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다”며 “이를 위해 제도와 조직을 재정비하고 따뜻한 직장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여 대표는 앞으로 지점 순회방문 등을 통해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할 방침이다. 그는 “거대한 나무도 큰 숲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서야 한다”며 “‘우리’는 ‘나’보다 힘이 세다는 걸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또 하나의 과제 ‘적자 탈출’
여 대표가 마주한 또 하나의 과제는 적자 늪에서의 탈출이다. 한화투자증권은 발행액 기준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자체 헤지비중을 2013년 33.6%에서 2015년(1~9월) 62.7%로 두배 가까이 늘렸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홍콩H지수가 급락하며 파생결합증권 헤지 과정에서 자기매매손실이 큰 폭으로 확대돼 지난해 4분기에만 348억원의 순손실을 봤고 지난해 총 8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화투자증권이 그동안 구조조정과 보수적 영업정책으로 위탁매매, 자산관리, IB 등 각 부문에서 전반적인 저하 추세를 보인 게 원인이다. 지난해 4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했으나 실적저하에 따른 자기자본 감소로 자본적정성 지표하락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여 대표가 내부소통 강화와 융합정책 재정비 등 ‘덧셈경영’ 원칙을 내세우면서 실적개선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 대표는 “최근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증권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고 조직을 안정시켜 업계 선두로 도약하겠다”며 “고객 입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직혁신과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1960년 서울 출생 ▲1985년 경인에너지 ▲2004년 대한생명험 재정팀장 상무보,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상무보 ▲2011년 대한생명 전략기획실장 전무 ▲ 2012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전략팀장 전무 ▲2015년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전략팀장 부사장, 한화투자증권 부사장 ▲2016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