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12월 결산 상장사는 전년 사업 종료 후 재무제표 작성, 이사회 승인, 감사보고서 작성, 회계법인 외부감사 절차 등을 거쳐 통상 3월에 주총을 연다. 한국예탁결제원, 에프엔가이드 등에 따르면 이달에만 1000개가 넘는 상장사가 주총을 개최한다.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지만 등기이사 선임, 정관 변경, 배당 등 ‘단골 이슈’들은 항상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주총 결과에 따라 해당 기업과 주주들에게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주총 시즌의 핫이슈는 무엇일까.

◆창업주 퇴장, 책임경영 화두


이번 주총 시즌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등기이사 변경안이 많다. 우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월21일 임기가 만료되는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롯데제과 이사회는 지난 7일 신 총괄회장이 고령(95세)인 데다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를 놓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 등기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 재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또 신항범 전무도 재선임하지 않고 대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인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과 민영기 롯데제과 건과영업본부장을 신규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오는 25일 주총에서 이 같은 안이 통과될 경우 신 총괄회장은 1967년부터 49년간 재직한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사진=뉴스1 DB

아직 주총 표대결이라는 관문이 남았지만 신 회장 측이 절반 이상의 우호지분을 확보해 안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와 함께 신 총괄회장은 임기가 종료되는 대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알미늄 ▲롯데건설 ▲롯데자이언츠 ▲부산롯데호텔 등기이사직 등에서도 같은 이유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롯데제과 주총을 계기로 그룹을 일궈낸 창업주의 공식적 퇴장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은 총수 일가의 ‘책임경영’을 위한 등기이사 선임안이 눈길을 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을 각각 현대모비스, 현대차·기아차·현대엔지비 등의 주력계열사 등기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된 것.

해당 안건이 주총에서 그대로 통과될 경우 정 회장은 기존 현대차, 현대파워텍, 현대건설, 현대엔지비 등과 함께 총 5곳의 등기이사를 맡고 정 부회장은 임기가 남은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까지 합쳐 총 6곳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주사 SK㈜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안이 상정됐다. 앞서 최 회장은 2014년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8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3월18일 열리는 주총은 복역기간 책임경영을 이유로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던 그가 다시 책임경영을 내세우며 복귀하는 첫자리인 만큼 재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LG그룹 오너 일가에선 구본무 회장이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지주사 ㈜LG 사내이사로 재선임될 예정이다. 또 동생인 구본준 ㈜LG 부회장은 LG화학 사내이사에도 신규 선임돼 그룹의 미래성장사업인 소재부품사업 육성을 직접 챙길 전망이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주주총회 현장. /사진=뉴스1 DB

◆삼성, 주주친화기업으로 변화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은 3월 주총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예고했다. 큰 틀은 오너 일가의 역할보다 주주친화기업으로의 변화다.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에서 기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정관을 개정해 사내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맡도록 하는 안건을 올렸다. 이는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겨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지난해 약속했던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호텔신라, 삼성SDS 등 다른 계열사 9곳도 마찬가지로 이사회 독립성 확보와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관 개정에 동참할 방침이다. 다만 매각설이 제기된 제일기획은 이사회 의장을 대표이사가 맡도록 한 현행 정관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기존 연 2회 중간배당을 실시하도록 한 정관을 개정해 매분기 말에 배당을 실시하는 분기배당 방식을 도입하는 안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신주발행 한도 축소 안건도 처리할 예정이다. 또 주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 비중이 높았던 정관을 한글로 바꾸기로 했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 /사진=뉴스1 DB

◆삼성·현대·SK·LG, 조단위 '배당 잔치'

배당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49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238개 대기업 상장사 중 배당여부를 공시한 165개 기업의 배당금 총액은 13조152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배당금 총액 11조927억원보다 17.3% 늘어난 규모로 아직 배당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기업들까지 감안하면 올해 배당금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체 배당금에서 10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81.6%(1조6226억원)다. 기업별 배당금 총액을 따져보면 삼성그룹이 4조1960억원으로 압도적 1위다. 이어 현대차(2조1779억원), SK(1조7911억원), LG(1조667억원) 등이 조단위 배당 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한편 일각에선 매년 반복되는 특정일 '주총 쏠림' 현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11·18·25일 3일 동안 수백개의 기업이 일제히 주총을 실시해 여러 기업의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주주들은 참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 쏠림에 따른 주주권한 행사 침해를 막기 위해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 시스템을 제공하지만 기업들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이다. 

예탁원 관계자는 “매년 주총 쏠림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올해도 큰 변화가 없다”며 “소액주주들의 제대로 된 의결권 행사를 위해 기업들이 전자투표·전자위임장 시스템 도입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