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종로 근처 어느 건물 앞을 지나던 중 친구가 갑자기 몸서리를 쳤다. 이유를 물었더니 오래전 그곳을 지날 때 행인이 건물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에 머리를 맞아 즉사한 것을 눈 앞에서 봤다고 한다.

사람이 사고로 죽는 장면을 목격하면 오랜 세월 트라우마(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남는다. 이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가족이 당하는 것을 본 경우 더욱 충격적이다.


필자의 아버지 형제 중 작은아버지 한 분의 온 가족이 6·25 전쟁 중 죽게 된 사연을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다. 마을이  폭격 당하던 날 주민들은 미리 만들어 놓은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 폭격 도중 방공호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생매장 당해 죽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와서 시신을 발굴하다가 그때까지 생존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그 사람이 작은어머니였다.

생매장 당한 사람은 빠져나오기 위해 맨손으로 땅을 파다가 손톱이 빠져 있었고 가족끼리 껴안고 죽어간 모습은 눈뜨고 보기 힘들게 참혹했다고 한다. 작은어머니의 남편과 자식들도 모두 숨졌다. 어느 집 안방으로 옮겨진 작은어머니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의식이 돌아왔지만 양잿물을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무너진 방공호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가족이 죽어가는 과정을 함께 하다가 혼자 살아남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뉴스1 최창호 기자

◆세월호-5·18로 희생된 사람들
세월호 참사 당시 눈앞에서 친구들이 휩쓸려가는 것들 보고 살아나온 후 트라우마로 인해 성격이 완전히 바뀐 아이들도 있다. 사고 전 친구도 많고 활발했는데 내성적으로 변한 경우도 있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지만 자신은 살고 친구는 죽어간 현장의 기억을 잊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생존자 부모들 간담회에서 생존자 박모군의 아버지는 아이가 어느 날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박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아이들 명찰을 다 달고 유언장 8장을 써놨는데 3장밖에 못 읽겠더라”고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학생들을 구조하는 데 적극 나섰던 김동수씨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재정난과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살기도를 했다. 다행히 딸에게 발견돼 목숨을 구했다.


5·18 광주민중항쟁도 죽어간 사람들 외에 정신적 희생자들을 만들었다. 국가가 인정한 희생자는 4312명에 달하며 생존자 3193명도 힘겹게 사는 경우가 많다. 5·18부상자와 가족의 41.6%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이중 29.5%가 중증 증세를 나타냈다.

5·18기념재단과 유족회에 따르면 트라우마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5·18피해자 또는 관련자 중 42명이 자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한 피해자 대부분은 가장으로 남겨진 가족들의 2차 피해까지 발생했다. 5·18피해자가 트라우마로 가족들을 괴롭게 만들다가 가족이 그 피해자를 살해한 비극도 있다.

2008년 7월 캐나다에선 버스 안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해 전국이 떠들썩했다. 매니토바주를 달리던 야간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 중국인 승객이 옆자리 남자 승객(22)을 여러 차례 칼로 찌른 뒤 목을 잘랐다. 이 사건의 범인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로 인정되지 않고 정신병동에 수용됐다. 이런 그가 수년 후 감시관 없이 혼자 위니펙을 방문할 수 있는 외출이 허락돼 유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보도가 나왔다(알버타 저널, 2015.03.06). 당시 사건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머리를 참수당한 젊은이 시체를 본 경찰은 몇년 동안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다가 2014년 7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투신자살 목격자들의 트라우마

전동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전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을 목격하면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열차를 몰고 서울에서 출발한 박씨는 부산역 도착 직전 선로 위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박씨는 밀려드는 공포감에 온몸을 떨었다. 평소 쾌활했던 박씨는 말수가 줄었고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보직을 옮겼지만 증세는 더 심해졌다.

동료들이 모였을 때 혼자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만 연달아 피우는 일이 잦았다. 운전대만 잡으면 이상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경향신문 2012.07.08)

결국 문씨는 서울 전철 1호선의 남영역에서 다가오는 전동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집에는 명예퇴직금이 나오면 그 돈으로 아이들을 잘 키워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사고가 난 1호선 기관사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한 사람이 받은 상처가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역시 사망사고를 경험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기관사 최모씨도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타인이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자신도 고통을 죽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사망사고를 두번이나 경험한 코레일 청량리승무사업소 소속 모 기관사도 마지막 사고를 겪은 지 10여년이 흐른 후에도 당시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첫번째 사망사고에서는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 철로에 누워 있었고 비상제동 후에도 속수무책으로 기차가 여학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죽음 직전의 여학생이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누운 채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보던 여학생의 눈빛이 가끔 떠오른다”고 말했다.

두번째 사망사고에선 청평역에 다가가는 열차가 커브길로 접어드는 순간 어둠 속 철로에 서 있는 사람의 형체가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나타나 비상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던 사람은 ‘텅’ 소리와 함께 날아가버렸다. 열차에서 내려 찾아낸 시신은 처참한 상태였다.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이 캄캄해 보이며 말수가 줄고 웃음도 사라졌다. 갑자기 욕설도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커다란 마음의 상처는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차 사고·피해자 줄이려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전쟁이다.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 다녀온 미군의 3분의1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상처도 없이 멀쩡한 채로 돌아오는 참전용사를 보면 괜찮겠거니 여기고 당사자의 트라우마가 어떨지 생각 못한다. 그 트라우마는 비정상적이고 처참한 죽음을 옆에서 보며 사로잡히는 삶에 대한 공허함이다. 후유증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다 알콜중독자가 되거나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고 공허한 죽음을 스스로 택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 중 20만명은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흐른 뒤에도 영국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베트남전쟁(1960~1975년)에서 죽은 미국인은 5만4000명이었는데 미국정부는 두배에 달하는 10만2000명의 참전용사가 자살했음을 1987년 확인했다.

올해 2월9일 워싱턴포스트지에는 'My dad killed himself when I was 13. He hid his depression. I won’t hide mine'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13살 때 세탁방에서 목을 매고 숨져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그날 이후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진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 순간의 고통은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이어져 18년 동안 그를 괴롭혔다. 명문 미시건 대를 졸업하고 록 음악을 사랑하던 그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용사였다.

최근 광주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걱정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전남 곡성의 40대 공무원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던 중 20층에서 뛰어내린 공무원시험 준비생에 부딪혀 두 사람 모두 숨졌다.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와 5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염려되는 것이다.

유가족은 "그들도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크겠느냐. 보상은 바라지도 않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남편, 아버지가 날벼락 같은 사고를 당해 죽는 장면을 목격한 것은 커다란 트라우마로서 극복하기 쉽지 않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그 상태를 겉으로 나타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늘 따뜻한 배려로 보듬어줘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편안하게 심리적 고통을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며 때로는 마음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직업상 경찰관은 사람의 죽음을 대면하는 경우가 일반인보다 흔하다. 2013년 처음으로 서울 보라매병원에 경찰 트라우마센터가 개설됐으며 이후 여러곳에 추가 설치되고 있다. 2014년 7월 충남 아산에서 112신고를 받고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동료 경찰관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것을 다른 경찰관이 눈앞에서 지켜봤다.

흉기로 찌른 남성을 권총으로 제압했지만 동료 경찰관은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경찰 트라우마센터에서 치료받은 결과 정상인의 삶으로 회복했다. 센터를 통해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수천명의 경찰관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상담 및 치료를 받았다.

어떤 직업이든, 어떤 사람이든지 살다보면 사고에 의한 죽음을 지켜보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이후 트라우마가 자신의 정신에 계속 악영향을 끼친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정신적 외상을 치료받는 일이 육체적 외상을 치료받는 것처럼 당연시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 그것이 2차 사고나 2차 피해자를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