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1916년 태어나 1956년까지 짧은 생을 살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림뿐 아니라 편지도, 글씨도, 낙서도 모두 작품이 됐다. 격동의 시절, 치열하게 사랑했고 남김없이 소진한 그 흔적을 따라가 본다.


통영

◆[제주] 가장 빛나던 시절
누군가 이중섭을 일컬어 '식욕보다 미욕이 앞선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기'를 쉬지 않은 덕분에 작품을 연대별로 쭉 늘어놓는다면 한편의 일대기가 될 것이다. 가장 밝은 빛깔은 어디쯤에 있을까. 바로 제주 시절이다. 1951년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1년 정도 머물렀는데 평론가들도 이 때가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평가한다.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 같은 작품들에선 서귀포의 밝은 햇빛이 느껴진다. 그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행복했던 제주시절의 영향이다.

서귀포에는 이중섭 생가가 있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김순복씨가 이 가난한 화가 가족에게 방을 내줬다. 1.4평짜리 작은 방에서 네 가족이 생활했고 먹을 것이 모자라 게를 잡아먹고 살았지만 그들은 함께여서 행복했다. 고마운 것은 여전히 이 작은 방을 공개해 여행자들이 그의 흔적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집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방 이외의 공간에 주민이 살고 있어 그 느낌이 더 생생하다. 누런 개 한 마리도 몇년째 자리를 지키며 여행자를 맞이한다. 생가 옆 올레길을 따라가면 이중섭미술관이 있고 전시실 앞에는 '소의 말'이라는 시비가 있다. 이것은 이중섭이 쓴 시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허나 아름답도다'라는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미술관을 시작으로 이중섭 거리가 펼쳐진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까지 언덕길에 크고 작은 공방, 독특한 카페, 식당이 늘어섰다. 주말에는 플리마켓이 열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곳곳에서 이중섭 작품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본다. <길 떠나는 가족>을 조형물로 만들어 여행자들의 사진 포인트가 됐고 공방에는 이중섭의 그림을 담은 기념품이 다양하다. 이중섭미술관은 '서귀포 유토피아로'의 시작점이기도 해 제주에 둥지를 틀었던 예술가들의 흔적과 정보를 근처 커뮤니티센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들은 이중섭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다시 오마주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중섭 가족이 나와 게를 잡았다던 자구리 해안에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이중섭 소의말 시비
이중섭미술관

[부산] 그리움이 쌓이던 날들
이중섭 가족은 제주시절 전후로 부산에 살았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그림으로 소질을 보여 공모전에 수상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가세가 기울고 사상적으로 의심받는 등 시련이 닥쳤다. 결국 칠순·노모·형수와 이별하고 아내와 두 아들·큰조카를 데리고 온 곳이 부산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여인과 연애를 했고 '마사코'인 그녀에게 '남덕'이란 이름을 지어 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1945년 현해탄을 건너온 연인과 결혼했지만 전쟁이 일어났고 궁핍한 가장이 됐다. 그는 제주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막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범일동 판자촌에 거주했는데 마사코 여사는 "1497번지 판잣집에 거주할 때가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이곳에서 그린 작품이 '범일동 풍경'이다.


한편 제주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곳 역시 부산이다. 이곳에서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부산항에서 폐결핵에 걸린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희망과 그리움을 반반씩 품고 생활한다. 이때 일본으로 간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처음에는 다시 만날 희망으로 들떴지만 차차 그리움과 외로움이 깊어지는 것을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부산의 이중섭거리는 범일동 옛 보림극장 자리 뒤로 부산은행에서 마을광장까지다. 이곳은 산록도로로 향하는 오르막 언덕길이다. 길의 시작점은 유명한 '할매국밥' 앞에 늘어선 줄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다. 국밥집 앞에는 사람이 많지만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이중섭 길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망대까지는 1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그가 가족들에게 보냈던 편지와 부산 시절 그렸던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이중섭 전망대가 있고 투명한 난간에는 역시 그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이 있다. 난간 너머로 보이는 바다, 그리고 오버랩되는 편지 글귀에서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시인 김춘수는 그에게 <내가 만난 이중섭>이란 시를 보냈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중략)……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뼘 한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그의 그리움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좌절과 슬픔이 위대한 작품으로 남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제주

[통영] 인생이 작품이 된 곳
그는 가족과의 추억으로 나머지 일생을 살았다. 아니 버텼다. 그는 가족을 보기 위해 어렵게 일본에 갔지만 장모에게 문전박대 당했고 일본에 정착해 가족을 부양할 자신이 없어 귀국한다. 처절하게 좌절과 실패를 맛본 그를 도운 건 친구들이었다. 공예예술가 유강렬의 주선으로 통영 '나전칠기전습소'에 강사자리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흰 소' 등 인생 말기의 역작들이 탄생한다. 

통영 항남동 골목에는 그가 지내던 방이 남아있다. 그는 1952년부터 약 2년 정도 살면서 '흰 소', '황소', '달과 까마귀', '가족' 등을 그렸고 여러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개인 전시회를 여는 등 활력을 되찾았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에 이중섭 작가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르네상스 시기를 맞았다고 평한다.

이중섭의 마지막은 서울이었다. 1956년 9월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쳤고 3일이 지나서야 동료들이 알고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위대한 천재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의 작품들이 남아 별처럼 빛나고 있지만 그 일생을 생각하면 애상은 더 깊어진다.


[여행 정보]

제주공항에서 이중섭거주지 가는 법

공항입구에서 '중문, 한림, 신제주' 방면으로 우회전 - 공항로 - 신대로 - 우측방향 종천길 - 연동교차로에서 좌회전 - 애조로 - 중앙로 - 보목입구에서 '서귀포항, 정방폭포' 방면으로 우회전 - 칠십리로 - 정방폭포입구에서 '중문, 시청' 방면으로 우측 1시 방향 - 소암로 - 이중섭로

[대중교통]
제주공항에서 - 뉴경남호텔 정류장에서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제주 이중섭거주지: 검색어 ‘이중섭거주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9
부산 이중섭전망대: 검색어 ‘이중섭전망대’ / 부산광역시 동구 증산로 168
통영 이중섭거주지: 검색어 ‘이중섭거주지’ /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동 1241-1

[전시 안내] 이중섭, 백년의 신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중섭의 유화, 수채, 드로잉, 은지화, 엽서 등 총 200여점을 50여개 이상의 소장처에서 모아 전시하고 있다. 귀한 자료를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좋은 기회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간: 2016. 6. 3 ~ 10. 3
관람시간: 화, 목, 금, 일 오전 10시~오후 7시 / 수, 토 오전 10시~ 오후 9시 /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요금: (덕수궁입장료 포함) 성인 7,000원 / 중,고생, 어린이 4,000원
전시설명(도슨트): 오전 11시, 오후 5시
문의: 02-522-3342

● 숙박
(제주 서귀포) 백패커스홈
: 서귀포 이중섭 거리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공항리무진을 타고 오기에도 편리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올레군들에게 인기 있다.
예약문의: 064-763-4000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정로 24
도미토리: 2만원 / 2인실 6만6000원

(부산) 토요코인 호텔 부산역 2호점 : 가격 대비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토요코인 브랜드 호텔이다. 부산에 몇개의 지점이 있고, 이중섭거리와 가까운 부산역 근처에도 두개 점이 있다.
예약문의: 051-442-1045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125
객실요금: 4만9500원 ~ 11만88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