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라지는 것 중 하나로 서점이 꼽히는 건 우스우면서도 슬픈 일이다. 하나둘 사라지다가 멸종할지도 모르는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해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됐지만, 이로 인해 동네서점은 도리어 경쟁력을 잃었다. 온라인서점의 과다할인을 막아 가격평등을 맞추겠다던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가격이 고정되자 독자의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인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 중 도서 가격이 일반 물가보다 ‘비싸다’고 응답한 비율이 59.2%였다. 독서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소비자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의 영업이익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동네서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처럼 점점 작아지는 입지가 오히려 동네서점의 생존전략이 됐다. 겨우 발만 걸칠 법한 대지 위에 딱 그만한 서점을 세운 것이다. 이른바 ‘취향저격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형서점처럼 다양한 부문의 책을 진열하지 못하는 대신 특정 분야에 집중했다. 시집전문서점, 추리소설전문서점 등이 생겨났고 자신들의 취향에 걸맞은 행사를 진행했다. 시집전문서점에서는 시 낭독회와 시인들의 강연이 열리고 추리소설전문서점에서는 마니아만 알 수 있는 숨겨진 명작 추리소설을 소개한다.


취향저격서점들이 인기를 끌자 특색 있는 동네서점이 속속 생기고 있다. 유명출판사와 온라인서점도 카페와 서점이 합쳐진 복합문화공간 등을 열며 이 대열에 합세했다. 어떤 매력 때문에 독자들은 간편한 온라인을 마다하고 이곳을 찾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주목받는 취향저격서점을 찾아나섰다. 첫번째 주자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wit n cynical)이다.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편집숍 '프렌테'와 카페 '파스텔'이 한데 모인 복합문화공간이다./사진=강영신 기자

진눈깨비 흩날려 뿌예진 창밖 너머로 신촌역이 보이는 카페, LP판을 구하기 위해 찾을지도 모르고, 잠시 커피 한잔하러 들를 수도 있는 곳. 그리고 그 사이에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 있다.

/사진=강영신 기자

지도 앱으로 위치를 확인했지만 건물 주변을 빙빙 돌았다. 분명 이 건물이 맞는데 1층에는 통유리로 된 큰 카페만 있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 위층을 확인해도 ‘위트 앤 시니컬’의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아닌가 싶어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카페 ‘파스텔’ 안에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나, 카페 ‘파스텔’의 간판을 찾는다. 한참을 헤매다 처음 갔던 건물 입구에서 작달만한 간판을 발견했다. 흰색 간판에 띄엄띄엄 쓰인 글씨, ‘wit n cynical’.

카페 ‘파스텔’은 3층이다. 건물 외벽에 간판이 없으므로 턱을 치켜세운 채 이곳을 찾는 자, 헤맬지어다. 카페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프렌테’(Frente)라는 간판 아래 LP판이 진열돼 있고 왼쪽에는 시집과 소설책이 나열돼 있다. 문학과지성사,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등 유명출판사의 시집들과 소규모 출판사에서 간행한 특색 있는 책들이 놓여 있는 이곳이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다. 

/사진=강영신 기자

한쪽에는 ‘위트 앤 시니컬’의 대표 유희경 시인의 책상이 있고 모니터에 원고지가 하나 붙어있다. 원고지에는 유희경 시인의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첫머리에 실린 시인의 말이 적혀 있다. "수십 개의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을 생각한다"

'위트 앤 시니컬' 대표 유희경 시인의 책상/사진=강영신 기자

평일 저녁인 데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시집을 구경하러 들르는 방문객은 꾸준했다. 시집 가득한 책장에는 무엇을 볼까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시인의 쪽지를 붙여놨다. 시인이 추천하는 시집은 10% 할인해준다는 첨언까지.


시집 서가가 가장 크긴 하지만 시집만 있는 건 아니다. 소설책, 산문선, 문예지 등 다양한 책이 꽂혀 있다. 최근 1인 출판사와 소규모 출판사가 여럿 생기며 문고본 형식으로 좋은 책을 많이 간행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홍보가 어렵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위트 앤 시니컬’에 오면 소규모 출판사의 책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그만이지만, 책의 첫장을 펴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때의 떨림과는 비할 수 없다. 이곳에서는 서점 한켠에 서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과 책을 펴놓고 묵상에 잠긴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칠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강영신 기자

편집숍 ‘프렌테’에는 에코백, 엽서, 책갈피 등이 진열됐다. 인상적인 건 위트 넘치는 제작상품들이다. 원고지 노트, 시인을 모티브로 한 성냥 등이 있고 단편소설과 시를 작은 책자로 만들어 봉투에 담은 상품이 특히 눈에 띄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자신의 심정을 담은 작품을 골라 선물해도 좋을 듯싶다.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과 편집숍 ‘프렌테’를 지나면 카페 ‘파스텔’이다. 홍대 인디씬의 터줏대감 파스텔 뮤직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커피뿐만 아니라 맥주도 판매하며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준다. 

/사진=강영신 기자

서점과 편집숍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니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눈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돼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기형도, <밤눈> 시작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