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체계로 완벽한 통신보안을 유지했다. 풀 수 없는 통신 수단을 활용한 독일은 폴란드, 프랑스 등을 점령하고 영국을 마주한 도버해협에 진을 쳤다. 이 시기 영국의 수학자 엘런 튜링은 에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는 ‘콜로서스’를 개발, 독일군의 암호를 푸는 데 성공했다. 이후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해 전세를 뒤집었다.
암호는 인류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다. 역사상 강력했던 세력에는 고유의 암호가 존재할만큼 중요한 전략자산이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통신보안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양자암호통신의 완성은 ‘무선’

1984년 IBM의 찰스 베냇과 몬트리올 대학의 질 브라사르는 양자암호통신을 고안했다. 기존 암호통신이 수학문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역학의 물리법칙을 기반으로 한다. 복제가 불가능한 양자의 특성을 활용해 비밀키를 저장하고 그 키를 송수신자가 나눠가지는 것이다. 양자의 데이터는 단 한번만 읽을 수 있어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데이터 송수신 과정에서 일부가 탈취 됐을 경우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전파가 아닌 레이저를 활용하며 수신자는 편광패드나 간섭계를 활용한다. 양자암호통신에 활용되는 것은 양자의 구성요소(광자, 전자, 이온 원자 등) 중에서도 광자다. 빛의 최소 단위인 광자는 외부환경에 취약하다.

지난해 SK텔레콤이 장거리 유선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사진=머니투데이DB

이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의 양자암호통신은 유선 광케이블망에 국한됐다. 지난해 6월 SK텔레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수원시까지 왕복 112㎞ 구간에서 진행된 이 실험도 유선 광케이블망에서 구현됐다.
전문가들은 양자암호통신의 끝은 ‘무선’이라고 말한다. 유선 상태에서도 유용한 기술이지만 전쟁터 같은 작전지역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워서다. 중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 무선 양자암호통신 기술에 뛰어든 이유다.

◆국내 원천기술 있어 가능성 충분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연구진이 처음으로 무선 양자암호통신기술 시연에 성공했다. 실내에 있는 송신부에서 레이저 신호를 전달하고 건물 밖 약 50m 떨어진 수신부에서 양자암호키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구현한 것이다.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 박사는 “앞으로 통신거리를 늘리고 송수신부의 위치를 이동시켜 통신하는 연구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국내 기업의 쾌거는 해외 기술 수준에 비해 걸음마 단계다. 이 분야 선두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세계 첫 양자암호통신 위성 ‘묵자호’를 발사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이를 활용해 대륙간 무선 양자암호통신 마저 성공했다. 중국 베이징과 오스트리아 빈까지 약 7600㎞ 구간 중 무선 양자암호통신이 실제로 일어난 구간은 1200㎞로 추정된다.

투자도 활발하다. 중국은 2020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 양자연구소에 13조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웃 일본도 2022년 양자통신용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분야 정책을 수립한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 무선 양자암호통신 시연에 성공한 KIST의 암호 송신기. /사진제공= KIST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 분야에 배정되는 정부 예산이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026년까지 양자정보통신, 양자컴퓨터 등 양자관련 기술 개발에 총 2040억원을 투입한다는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지만 성공가능성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확보에 실패했다. 중국, 일본은 달리는 데 우리는 아직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후속연구가 수월한 상황임에도 자금 여력이 없어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리를 늘리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므로 충분한 자원이 투입된다면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