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조선사들의 잇단 수주로 업계가 불황탈출 조짐을 보이는가 싶더니 암초를 만났다. 철강업계가 후판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이나 교량 등 대형 구조물에 쓰인다. 선박 제조원가의 9~18%를 차지하기 때문에 조선업계가 받는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올 하반기 후판가격이 한차례 더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철강업계 역시 적자탈출이 간절한 만큼 올 하반기 후판가격 인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조선업계의 부담은 한층 더 가중된다. 아직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또 하나의 암초로 조선업계가 좌초 위기에 처했다.

◆1분기 수주 양호… 실적반영은 2년 뒤


최근 오랜 침체기에 갇혔던 우리나라 조선업계에 전세계 수주실적 1위라는 모처럼의 희소식이 날아왔다. 영국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량은 263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196만CGT를 기록한 중국을 누르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조선업계의 희소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철강업계가 올 상반기 톤당 약 70만원대인 후판가격을 3만~5만원씩 올리는 데 합의하면서 조선업계의 시름이 깊어졌다. 포스코(POSCO)는 지난 3월 톤당 3만원 정도 올린 데 이어 최근 약 2만원을 추가 인상했다. 동국제강과 현대제철도 톤당 약 5만원씩 차례로 올렸다. 철강의 원재료인 철광석, 철스크랩, 유연탄 등의 국제가격 상승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게 철강사들의 입장이다.

후판가격이 일제히 인상되자 조선업계는 한숨이 늘었다. 조선업계가 불황탈출 노선에 올라탔다고 하지만 2016년부터 이어진 수주절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은 수주가 늘었지만 2년 뒤 실적에 반영되는 조선업의 특성상 올해는 신규수주가 사상 최악이었던 2016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올 1분기 전세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는데도 실적이 저조한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잠정실적)의 올 1분기 매출액은 3조42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9.4% 줄었다. 또한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1238억원, 1321억원 규모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 1분기 1조2408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잠정실적)은 전년동기대비 49.1%가 증발됐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 역시 각각 478억원, 595억원으로 적자를 지속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케이프투자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올 1분기 매출액은 249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9.5% 감소할 전망이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87억원, 5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0.9%, 75.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차례 연속 인상 가능성 ‘촉각’

철강업계도 이 같은 조선사들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후판가격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조선업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에서 후판가격을 묶어뒀지만 그동안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올랐고 완제품가격이 원가 인상부분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사실 이번 후판가격 인상은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두번째다. 조선업계와 철강업계는 통상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번씩, 1년에 총 두번 협상을 진행하니 두차례 연속 가격이 오른 셈이다. 그럴 만도 한 게 2008년 후판가격은 톤당 200만원 수준이었다. 현재 70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철강업계의 상황도 이해가 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의 후판사업은 조선업계가 겪는 불황으로 인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번 후판가격 인상은 적자폭이 줄어드는 것이지 흑자로 전환되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반기가 되면 조선업계의 상황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철강업계에는 올 하반기 후판가격을 한차례 더 올리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3사는 올 하반기 후판가격 추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후판가격이 세차례 연속으로 오르는 셈이고 조선업계는 또 한번 직격탄을 맞는다.

결국 조선업계는 불황을 더 오랫동안 짊어져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적부진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노사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현재 노조가 고용안정을 목적으로 파업을 결정한 상황에서 실적이 악화되면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진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차입금 상환을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1조4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했는데 그 효과가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후판가격이 또 오르면 재무구조가 다시 악화될 여지가 있다.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대우조선해양은 발목을 잡힐 수 있다. 계속된 후판가격 인상으로 올해 실적이 둔화되면 새 주인 찾는 게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채권단의 추가지원 명분도 희미해진다.

이에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황이 당초 예상만큼 살아나지 못해 업계가 수주절벽·일감절벽의 위기에 처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후판가격 상승은 경영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토로했다. 또 한국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철강사들이 오는 8월 후판가격 추가 인상 움직임을 보여 조선업계의 걱정이 크다”며 “가격이 추가 인상되면 정부 등에 자제안이 담긴 권고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9호(2018년 5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