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힘은 여러 경로에서 나왔다. 그 중 프랑스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넘어온 숙련기술자가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1685년 낭트칙령을 폐지함으로써 위그노 기술자 1만5000여명이 영국으로 이주해 기술 발전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영국·프랑스 위상 역전시킨 ‘위그노 박해’
위그노 박해로 영국이 큰 도움을 받은 반면 프랑스는 1000년가량 이어온 유럽의 주도권을 점차 잃어갔다. 프랑스 왕 앙리 4세는 1598년 4월13일 낭트에서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낭트칙령'을 반포했다.
이로써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30년 동안이나 이어졌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낭트칙령 이후에도 불씨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종교 갈등이 계속되자 루이 14세는 아예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위그노의 종교적·시민적 자유를 전면 박탈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남·서부에 살던 신교도 100만명 가운데 약 40만명이 영국과 네덜란드 등으로 망명했다.
당시 위그노에 대한 박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1762년에 일어난 ‘칼라스 사건’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살던 68세의 상인 장 칼라스는 큰 아들이 목을 매 자살하자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던 그를 목 졸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거열형에 처해져 사망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 사건의 재판과 거열형이 명백히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다른 양심적 지식인도 합세한 결과 칼라스는 사형당한 지 3년 만에 무죄로 정정됐다. 볼테르는 그 뒤 종교적 광신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선량한 칼라스가 사형당한 것을 고발하고자 ‘관용론’이라는 책을 썼다.
스페인도 종교탄압과 인종차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스페인은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해 아메리카를 처음으로 발견한 뒤 남미에서 엄청난 금은보화를 들여와 16세기 패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신교도들을 화형식에 처하는 마녀사냥과 유태인 학살 같은 불관용 정책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몰락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1588년 예상을 뒤엎고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에게 참패한 것은 몰락을 확인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와 미국의 패권
대한제국(1897~1910년)의 운명을 바꿔놓은 러시아제국과 일본의 러일전쟁(1904년)에서 러시아제국이 패배한 것도 불관용 정책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겉으로 드러난 객관적 전력은 러시아가 확실한 우위였다. 신흥국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한 비용 조달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영국에서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 때 자금을 대준 것이 유태인이었다. 러시아의 유태인 박해에 보복하기 위해 유태인이 일본을 지원함으로써 일본의 승리를 뒷받침했다. 러시아의 패배로 일제는 을사늑약(1905년)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정미7조약으로 행정·사법권을 불법 강탈한 뒤 주권마저 총칼로 위협해 빼앗았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뒤 폐허가 된 유럽에 막대한 경제 원조를 단행한 마셜플랜으로 유럽에서의 발언권을 확보했다. 이민으로 만들어진 국가답게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찾아오는 전 세계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갖고 온 문화도 모두 포용했다. 소련은 ‘철의 장막’을 치고 미국과 패권을 다퉜지만 특권층(노멘클라투라)의 권력독점과 인민 배제 정책으로 스스로 붕괴했다.
◆성리학의 배타성 벗어던질 때
15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했던 조선이 16세기 중반부터 뒷걸음질 친 것은 ‘주희 성리학’이 이데올로기화되면서 포용대신 불관용을 고집한 탓이다. 송나라 후기에 정립된 성리학(주희는 1200년에 죽었다)을 뒤늦게 역성혁명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중종반정(1506년) 이후 점차 배타적으로 변했다.
공자가 체계화한 오경(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대신 주희가 강조한 사서(논어·맹자·대학·중용, 이 중 대학과 중용은 예기의 한편이었다)가 중시되면서 유교답지 않은 유교 국가로 변질됐다.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기치인(자신을 닦아 남을 다스린다)을 도외시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파를 만들어 자당의 이해에 어긋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엄청난 죄를 덮어씌워 죽음으로 몰아갔다. 중세 유럽에서 광신도들이 자행했던 ‘마녀사냥’이 조선에서 일어난 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겪고도 반성하지 못한 ‘주희숭배자’들은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 뒤에 ‘세도정치’로 권력을 독점해 망국을 자초했다.
볼테르는 다음과 같은 말로 ‘관용론’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종파 간의 갈등이 빚어낸 광기 때문에 무수한 가정이 희생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략) 유약한 사람들을 선동해 생각이 다르기만 하면 누구에게라도 죄를 뒤집어 씌우는 그 음험한 맹신이 날뛰는 때가 바로 그런 경우(맑은 하늘에 날벼락 치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여러 가지 갈등으로 어려움을 빚는 대한민국이 기해년 새해에 ‘황금돼지 복’을 누리기 위해서 곰곰이 새김질해볼 말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4호(2019년 1월8~1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